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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지난해 결혼을 하고, 올핸 아이를 낳아 어느덧 ‘아기 엄마’가 돼버린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한 지방의 기차역에서 이 책을 샀다. 기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고, 무난히 읽어나갈 소설이면 좋겠다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삶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해서, 풋풋하고 아련하고, 때론 어른스러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은 소설 속 화자들이 ‘중년 남성’, 그것도 ‘여자없는 남자들’이라서 도대체 감정이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사고하는가, 이들에게 여자는 절대적이면서도 또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필요한 대상이고, 그런데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대개는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실제로 현실에서 여자 없는 (중년의).. 더보기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생각이든 쿤데라 본인의 생각이든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성’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이 부러웠다. 그의 소설은 읽으면 그게 ‘허세’로 보이지 않았다. 그 생각의 끝이 무엇인지 어떤 지점이 이런 생각을 야기했고 그는 사회와 어떻게 소통하려고 애쓰는지 스스로 정리해보는 것도 좋았다. 물론 그걸 잘 해낸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어렵지만, 그래도 좋았다. 는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등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각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것과 같은. 처럼, 존재의 본질은 ‘무의미’라고 해석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더보기
<원자력 프로파간다> 최근 일본 온타케산(御嶽山) 분화를 계기로 아베 신조 정권이 강행하는 ‘원전 재가동’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뒤 원전 문제는 일본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으며,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사 읽기 >>“화산 주변 재가동 철회를” 일본 잠자던 ‘탈 원전’ 논의도 다시 분출)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하청업체 직원 니이쓰마 히데아키는 원전 사고 이후 삶의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했다. 그의 조모와 부모, 4형제가 함께 살던 대가족은 사고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 원전의 연이은 오작동과 정지 조치에 대해 니이쓰마는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니이쓰마는 “작은 사고들은 큰 사고로 이.. 더보기
“떠나기 위해선 돈과 용기가 필요했다” SBS 수목드라마 를 보고 있으면 뭔가 어수선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렇고, 그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도 어수선하다. 정리도 되지 않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하고, 이 사람들은 삶에 진지한 것 같은데 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개는 이 드라마를 두고 "현대인은 저마다 어느 정도의 정신 질환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석한다. 어떤 일을 겪었든 그것은 마음의 병이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그런 지점을 비교적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면, 소설 (윤보인, 문학과지성사, 2014)는 침침하고 폐쇄적이며, 외적으로도 심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를 테면, 어두컴컴한 건물 한 채에 모여사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괴로운 .. 더보기
스테판 에셀 <참여하라>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가 한창일 때였다. 스테판 에셀의 (2011, 돌베개)가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경향신문 1면에도 실렸던 기억이 난다. '2030'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젊은 세대라고 불리는 한 세대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였다. 이들이 '분노했다'는 것에 사회는 주목했다. (사실 등록금 문제는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학부모 세대와 함께 고민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였다.) 이 책이 주목받은 것처럼, 거리로 나온 '젊은 세대'가 무언가를 바꾸길 바랐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아랍의 봄'을 거친 뒤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2012년 4월 총선에서도 청년층을 향한 정치권의 손짓이 두드러졌다. 청년비례대표를 뽑았고, 대선을 앞두고 반값 등록금 실현이 공약으로 나왔다. 그렇게 '분.. 더보기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출퇴근 길에 지나는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붉은 장미가 피었다. 꽃집에서 파는 봉긋한 장미가 아니라, 꽃잎을 최대한 펼쳐보이는 새빨간 들장미다. 이 장미가 피는 걸 보니, 초여름이다. 시간도 멈추고 삶도 멈춘 것처럼 느껴지더니 그 장미의 색이 너무 붉었던 모양인지 그래도 시간은 흐르는 구나, 라고 체념처럼 헛헛한 말이 새어나왔다. 박완서의 단편소설을 엮은 (문학동네, 2013)에 라는 단편이 들어 있다. 라는 단편집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에 '문학적 건망증'이란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그 말처럼, '문학적 건망증'이란 단어만 살고, 나머지는 기억 저편에 있다. 라는 글도 읽었던 기억만 있을 뿐 내용을 재생해보라 하면,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읽.. 더보기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또록 또록, 눈물이 맺히는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아픔이, 너무나 선.명.했다. 공선옥 작가의 에선 마음에 맺히는 '한 줄'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한 문장이 바로 다음 문장을 불러냈고, 그 문장들은 슬픈 노래의 연속이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2013, 창비)에는 정애와 묘자, 두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1970년말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시골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났던 광주를 배경으로 정애와 묘자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고 찢어지고 슬픔이 되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시대배경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의 삶이 세세하게 묘사되는데도 자꾸만 그 삶이 안타깝고 그 시대가 아프다. 가난한 시골에서 정애가 이웃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오기까지.. 더보기
도시 심리학 : '도시인으로' 살기에 대한 이해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일반 교양 수준의 심리학), 나는 심리학이 불편했었다. 이 심리학의 이론들을 적용해서 '나의 행동을 무엇무엇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싫었다. 내 행동을 심리학 이론대로 해석해서, 저 사람은 지금 내 심리를 이렇게 읽고 있겠구나 하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마치 심리학이라는 안경을 쓰고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거나,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데 오해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행동이 모두 내 어린시절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거나 내 꿈이 모두 무의식에 켜켜이 쌓여 있던 것들의 발로라고 생각하는 것도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의 어떤 행동들이 어린시절의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좀 편협하긴 했지만 '많이 가진 것이 결핍보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