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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캠페인

 1일은 121주년 노동절이었다. 이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의 권리’가 돌봄 노동자들에겐 조금 더 먼 이야기다. 대부분 중고령 여성인 돌봄 노동자들은 저임금, 부당한 처우,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따뜻한 밥 한끼’다.


◇“일주일치 식량 냉동밥 18개” = 정경임씨(51)는 6년째 간병일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일요일 하루를 제외한 24시간씩 주 6일간 내내 병원에서 보낸다. 이날 정씨는 9층 병동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정씨는 환자의 가래를 빼내주고, 음식물 주입을 도와주고, 씻기고 안마도 해줬다. 약도 챙기고, 진료시간도 꼼꼼히 챙겨야했다. 그야말로 환자의 ‘손과 발’이었다.
 정씨는 “밥 3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마저도 집에서 싸온 냉동밥을 녹여 먹으면서 마땅한 공간이 없어 배선실에서 서서 먹었다. 식당에 가서 3800원짜리 밥을 사 먹을 수도 있지만 급여를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 24시간 꼬박 일하고 5만5000원~6만5000원의 임금을 받는다. 간병은 비공식 노동으로 간병사는 ‘근로기준법’ 대상자가 아니다. 급여는 환자 측에서 받고, 업무태도와 관련해 병원의 눈치를 보게 된다. 정씨는 “보호자가 올 때는 잠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데 갈 데가 없어서 한번은 복도에 박스를 깔고 눈을 감고 있는데 참 서글펐다”고 말했다. 일대일 간병을 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환자의 곁을 떠날 수 없어 잠도 쪽잠만 이어잔다고 했다.
 이숙자씨(60)는 “‘보따리’가 제일 문제”라고 말했다. 간병사들은 병원에서 살지면 작은 생필품 몇가지를 놓아둘 공간이 없다. 환자 침대 밑에 두기도 하지만 돌보는 환자가 바뀌면 보따리를 싸서 이동해야 한다. 이씨는 “나쁜 계모 밑에서 눈치 받고 사는 설움이 있다”며 “작은 공간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밥 먹고 쉬고 옷갈아입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 장소와 시간만 있으면 하는 일에서 더 큰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돌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자신들이 의료서비스 제공자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차승희 공공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간병분회장은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병원에서 간병사는 없는 존재다. 간호사와 같은 일을 하며 의료서비스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데 그만한 처우는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병노동자 최은자씨가 지난달 27일 서울대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김문석 기자


◇“돈벌이 수단이 돼 버렸다”=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라 제도권 안에 있는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은 어떨까. 지난달 29일 오후 6시 하루 근무를 마친 요양보호사 주민순씨(59)를 만났다. 주씨의 일과는 오전 9시 15분까지 환자의 집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돌보고 있는 암환자 할머니의 대소변을 치우고, 옷가지 세탁하고 할머니 안마 좀 해드리고 나면 점심 때다. 할머니의 점심을 챙기고 나면 도시락을 먹고 다른 환자의 집으로 이동한다. 가끔 싱크대 앞에 서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시간에 쫓길 땐 김밥을 사들고 이동중에 남몰래 먹기도 했다. 2시쯤부터 오후 6시까지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주씨가 보여준 ‘업무 차트’에는 20가지의 체크 항목이 있었다.
 주씨는 오전·오후 돌봄 대상 1명씩 한달에 약 50만원씩, 월 100만원 안팎을 번다. 하지만 식비와 교통비는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 주씨는 “빨레와 청소, 집안 심부름 등 안해도 되는 일을 해야할 때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주씨는 ‘모르는 소리’라고 답한다. 민간 센터 등은 ‘돌봄 대상자’와 ‘요양보호사’ 모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센터 측은 돌봄 대상자 1명당 국민건강관리공단으로부터 약 100만원의 지원을 받게 돼 있다. 센터에 등록하게 하려고 되레 돈을 쥐어주면서 환자를 늘리려고 하는 마당에, 요양보호사로 하여금 가사일을 덤으로 해주게 하는 건 기본이 됐다. 요양보호사에게 가사일을 떠맡기는 구조는 이러한 ‘상술’에서 비롯했다. 돌봄 서비스 공급을 시장에 맡기지 말고 공적기관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현재 공적기관에서 담당하는 요양서비스는 3% 수준이다. 또한 요양보호사들이 소속돼 있는 센터나 시설에서 임금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례로 많다.
 이날 서울 신월동에서 또다른 60대 요양보호사 정명자씨를 만났다. 정씨는 지난 2월 출근길에 쓰러져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정씨는 서울 ㅎ동의 한 요양원에서 지난해 8월말부터 일했는데, 급여 월 130만원에서 10만원을 더 주겠다는 원장의 말에 주방업무를 맡게 됐다. 쓰러질 무렵 배추 200포기의 김장을 했고, 음력 정월 대보름 특별식을 해냈다. 돌봄 대상자 27명과 직원 등 서른명이 넘은 인원의 식사를 마련하다보니 과로한 것이다. 하지만 원장은 정씨가 쓰러지자 동의 없이 정씨를 사표처리했다. 정씨는 현재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려 하고 있지만, 그 또한 아득한 이야기다. 
 

 돌봄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그림자 노동자’라고 부른다.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을 하지만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자들은 이제 햇빛을 쬐기 위해,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건강세상네트워크, 병원노동자 희망터, 공공노조 등 26개 단체는 지난달 19일 간병·요양 노동자의 실태를 알리는 ‘따끈따끈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간병·요양 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근로기준법을!’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출발했다. 캠페인단은 “간병·요양 노동자의 일터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준수 요구가,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가 절실한 노동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캠페인단의 최경숙 (사)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는 “정부와 병원이 제공해야 할 필수 의료서비스를 환자나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며 “고령화된 사회에서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간병서비스 제도화’는 지난해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 시민사회 등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간병노동자의 급여를 환자 개인의 부담이 아닌 의료서비스의 일환으로 제도권 안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또한 경제적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간병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간병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간병노동자의 노동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적용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올해 7월 1일이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 3년째다. 법 개정이 가능한 때다. 정금자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요양보호사 제도는 당초부터 시장에 맡긴 채 출발해 결국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캠페인단은 “요양기관의 요양보호사 법적 인력기준은 강화하고, 요양 서비스에 대한 관리·감독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전면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11년 따끈따끈 캠페인단은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부당한 처우, 제도적 불비 등 간병·요양 노동자의 노동현실과 법적인 과제를 알리고, 이러한 서비스가 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대중적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돌봄 노동자 고용·노동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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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사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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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형태    특수고용(환자와의 일대일 간병)                     직접고용(정규직, 계약직, 시간제)
          간접고용(파견업체 소속), 직접고용                   간접고용(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파견업체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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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장소   병원(급성기병원, 요양병원) 또는 재가근무             요양원 시설 또는 재가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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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규모   병원급 이상 1일 간병인 수요 18만7938명 추산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 94만8221명
         병원급 이상 평균 유료활동 간병인 수는 4만2906명     취업 요양보호사 23만3600명
          (*200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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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특성   비공식 노동으로 근로기준법 등 미적용.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에 따라 제도화됨.
         산재보험 등 5대 보험 사각지대                       노동기본권 및 5대 보험 대상자나 대부분 혜택 못받음
         대부분 중고령 여성노동자들로 저임금·불안정 노동      민간시설의 제도 악용으로 업무외 노동량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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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임금   24시간 연속 주6일 근무, 시급 2292~2708원           2교대제의 경우 월평균 123만2400원, 시급 39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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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 따끈따끈 캠페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