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볼 때, 그 길까지 오게 된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대부분 '우연'일 때가 많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인생이라고 누구나 말하듯이. 그 선택이 자신의 몫일 때도 있지만 타인에 의해 강요받을 때도 있을 것이고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경우의 수의 총합이 현재에 이른 자신일 텐데, 어떻게든 일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떤 강한 흐름이 그를 하나의 길로 가게 만들고, 흔들리지 않게 하고, 내면에서도 강한 욕구가 일어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그의 이름처럼(쓰쿠루는 일본어로 '만들다'는 뜻) 역을 좋아하고, 그래서 역을 만들기 위해 나고야에서 도쿄에 있는 대학을 오게 되며, 역을 만들기 위해 철도회사에 들어가서 역을 고치면서 살아간다. 자신도 왜 역을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주어진 조건'과 같았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에 '기이한' 경험을 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완전한 공동체에 속했다. 자신을 제외한 4명의 친구(남2, 여2)는 아카마쓰, 오우미, 시라네, 구로노-빨강, 파랑, 흰색과 검은색- 등 이름에 색채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 쓰쿠르는 자신을 색채가 없는, 개성이 없는 인물로 인식한다. 문제는 그가 역을 만들기 위해 도쿄로 대학을 오게 됐고,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그 그룹으로부터 '추방'을 당했다는 것이다. 쓰쿠루는 이유도 모른 채 공동체에서 추방당했고, 캄캄한 암흑의 바다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힘든 시절을 지나 서른여섯살이 됐다. 그리고 두 살 연상의 사라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16년 전의 일로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그는 16년 동안 그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례에서 그는 오해와 아픔의 고리를 찾아내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맞다. '역을 좋아하고 역을 만든다'는 한정된 목적은 그의 인생 진로를 눈에 선하게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 선택한 길에서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발생하면서, 그의 인생은 간결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가 목적을 잃어버렸다거나 목적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하게 보이는 삶, 이란 것도 삶의 수많은 결 중에 그저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지 총체적인 삶을 전부 간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목적'이 하나가 아니니까 더 복잡다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겠지.
+) 이 소설에서는 <르 말 뒤 페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로가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곡). 이 말은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으로 정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말. 향수라고도 번역된다. 책에서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되는 장면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