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온 지 나흘째. 시애틀 중심에서 버스를 타고 와네치란 도시에 와 있다. 와네치는 인디언의 이름이었다고 하고, 이 도시의 분위기는 고풍스럽다. 단층 벽돌 건물들 위로 사막같은 민둥산이 보이고, 이곳은 또한 사과가 유명하단다. (마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 눈에 영상처럼 맺혔다가 이내 현실이다.)
시애틀의 9월은 보통 여름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흐린날이 많았다고 했다. 나의 시애틀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내게는 곧 시애틀의 9월의 날씨는 '이렇게'만 기억될 것이다. 아침엔 가는 비를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밤이 될수록 검은 구름이 땅을 향해 내려앉고, 그리고 그에 알맞게 산책하고 싶게 만드는 '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시. 시애틀, 케네위크, 와네치.
미국 유기농 산업에 대한 취재라지만, 내게는 이번 출장이 '어떻게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사느냐'의 문제로 다가왔다. 의.식.주.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남에게 해를 덜주면서 살아가는 방법, 환경을 지키며 사는 방식, 그것이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고 불편한 진실이라면 불편한 진실이었다. 인간이 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타인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곧 제 편익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은 곧 제게도 해악이 돼 돌아온다는 것이 너무 분명한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건,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부의 상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은 엘리트 문화다. 대형마트에서 싼 가격에 공급되는 공산품과 식자재를 구입하는 건 편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국은 비용의 문제다. 다국적(대) 기업들의 눈가림이고, 미디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무지의 탓이기도 하다.
시애틀 사람들이 유기농과 공정무역과 지역 커뮤니티를 생각하며, 환경을 지키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또 그에 부응하는 것은 미국의 동부보다 대체로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공부보다 놀이가 중요하고, 일보다 삶의 휴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곳사람들의 공감대다. 그래서 유기농에 대한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그것을 향휴할 수 있으려면 오랜 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자산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원래 유기농으로 살아왔다. 유기농으로 회귀하는 것이 진화 뒤에 오는 또다른 (선진화된?) 문명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
(사진 : 와네치 거리에 우뚝 선 시계)
(유기농 와인농장 in 와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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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에서도 나는 여전히 수줍다.
+) 많은 것을 느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일면 좋았고 일면 부족했다.
+) 아직도 나는 '어린 나이'로 통한다.
+) 종종 직업의 룰, 혹은 출장의 목적에서 벗어나 망상에 빠졌음은 또 어찌할 수 없었다.
+) 유기농 교육을 너무 세게 받아서 세뇌된 느낌이다.
+)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밤을 앞두고, 나는 과연 곤히 잠들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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