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오후,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이 블로그에 만들어놓은 '소설 속 한 줄'의 첫 줄을 채워넣기 위해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들을 곰곰 생각하다가, 역시나 첫 번째는 이 문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완전한 문장으로 '기억에' 온전히 남아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작가 신경숙의 2010년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문학동네)에 있는 문장이다.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이 그 문장이 들어 있는 원고를 읽었을 때 느꼈던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을 나도 가끔 이 문장이 찍힌 사진을 보고,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장'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되새기곤 했다.
이 책 표지가 무릇 '가을 빛'이어서일까. 표지는 가을빛이지만 이 책의 이미지는 새하얀 눈밭이다. 다만 늘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3년 전 읽었던 책이 선명하게 폭우와 함께 되살아났다. "지금 내가 그곳으로 갈게"라고 말하는 연습이 된 것도 이 책 덕분이긴 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되새기는 건, 나도 친구도 영화도 TV 드라마도 너무 흔한 것 같지만 '잘 못하니까' 늘 모두의 주제가 되는 것도 같다.
이 소설에서 내가 얻은 건 "지금 내가 그곳으로 갈게"라는 말도 있지만 저 문장 하나가 가장 크다. 어떤 글이든 문장의 힘을 생각해서, 폭력에 이로운 글을 쓰면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껏 써온 숱한 문장이 기억에 채 저장되기도 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혹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문장들을 쓰겠지만, 그 문장이 폭력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한 번쯤은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요즘은 주로 문자로 주고받기도 하니까, 짧은 문장이라도 그게 누구를 향한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라도 하면 문장 하나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요즘 뉴스와 댓글, SNS 속 문장들에도 너무 날카로운 무기가 장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또 생각했다.
혹여 내가 어설프게 써낸 수많은 문장들이 내 기억에 남지 않은 채로, 곁을 떠나서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지, 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상황들을 염두에 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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