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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카이스트 캠퍼스

4월 여느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카이스트 교정에는 목련과 벚꽃이 만개했다.


처음 가보는 카이스트 교정, 1999년~2000년 사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카이스트>의 추억이 잠시 스쳤다. *과학 천재들이 모인 곳, 단편적인 인식. 카이스트. 그곳에서 지난 13~14일 1박2일간의 취재기.



너른 캠퍼스에 펼쳐진 잔디밭에 봄 햇살이 질서없이 쏟아졌다.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의 자살에 따른 충격과 슬픔이 엄습했던 캠퍼스다. 바로 전날까지 애도의 기간이었고 곳곳에는 여전히 "변화를 원한다"는 대자보가 붙여져 있었다. 이날은 카이스트 총학생회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비상총회를 소집한 날이기도 했다.




오후 4시 서남표 총장과 주대준 부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서 총장은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교수와 학생들과의 소통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교수협의회 측에서 만든 비상혁신위 구성을 서 총장이 받아들이기로 한 바로 다음이었다.

오후 7시 학생들의 입장이 발표되는 '비상총회'가 본관 앞 잔디밭에서 시작됐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7시를 기점으로 집행부의 신분증 확인(의사 정족수는 정원의 1/8이 채워져야 함)을 위한 긴 줄이 이어졌다. 학생들의 참여는 예상 밖이었다. 10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한 자리에 '처음' 모인 것. 전체 학생의 1/4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취재진과 학교 관계자의 입장은 '불허'였다. 폴리스 라인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건은 4가지
1. 정책 의사결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2. 서 총장의 개혁 정책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
3. 교육환경(영어강의, 등록금 등)을 개선한다.
4. 차기 총장선출시 학생 투표권을 보장한다.

학생들은 현장에 안건마다 표결했다. 나눠준 비표를 가지고 재적인원과 찬성, 반대, 기권표를 일일이 집계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중간 중간 각 안건에 대한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있었다. 자신들의 생각이 마이크를 타고 캠퍼스 곳곳으로 퍼지고 있었다.

   

1번 안건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학생들 스스로의 목소리가 반영되길 원한다는 뜻이다.
2번 안건은 찬성 416, 반대 317, 기권 119로 부결됐다. 3,4번 안건도 가결. 2번 안건의 부결과 관련해 다음날 "학생들은 서 총장의 개혁을 지지했다"라고 해석하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학생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학생들이 개혁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사는 왜곡됐으며 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즉,  개혁 정책에 의문을 던진 학생이 416명이나 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음날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반대표를 던졌다는 1학년 한 학생은 "개혁 정책을 지지하고 이 학교를 선택했는데 이를 실패라고 하면 선택한 사람들은 뭐가 되느냐"고 했다. 또 안건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라고도 했다. 4학년 한 학생은 "개혁 항목마다 평가하는 게 다른데 또 개인마다 다 다른데 실패를 인정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비상총회 당시 자유발언에서 이 안건에 반대한다는 학생은 "우리는 서울에 있는 대학도 아니고, 종합대학도 아니다. 경쟁 위주의 정책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에 가는 학생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때 승자였고, 카이스트 내에서도 승자 그룹은 있다. 카이스트는 승자들이 패자들과 함께 가지 못하는 구조일까. 학생들은 언론이 카이스트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카이스트 안에서는 이미 타인의 고통을 보듬어가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개혁 실패 인정 요구' 안건의 부결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개혁 정책으로 얻어낸 업적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비상총회에서 학생들은 징벌적 등록금제 폐지를 요구했다. 경쟁의 부작용은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변화에의 욕구는 커져가는데, 학교측이 변화에 응대하는 자세는 어떨까. 

최인호 부총학생회장은 서 총장이 "학생 대표자들을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과의 소통에 올인하겠다고 했지만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학생 대표자들(총학생회)과의 만남은 거의 없었다.
혁신위 구성안에 학생 지명이 3명이 포함됐지만 그 비율이나 내용에도 학생회측과는 협의가 되지 않았다.
서 총장은 어떤 학생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총학생회는 총장과의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위의 게시판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

"제발 자비 좀 총장님"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악" 소리 나는 게 카이스트의 현실일까

비상혁신위가 3개월간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 '내용'을 서 총장과 학교 측이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개혁'은 사전상 의미로
ꃃ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 ≒혁개(革改).
이와 같은 뜻이다. 고통을 수반한 개혁 정책의 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외부인의 눈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당사자들 느끼기에 얼토당토 아니한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또 구성원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스스로 보고 들었지만.

4월 처음 가본 카이스트의 캠퍼스에 대한 단상은
'화사한 벚꽃과 슬픈 글자가 함께 흩날리는 곳'.

사실은 카이스트가 아닌 여느 대학 캠퍼스에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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