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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엔 무슨 일이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집트'는 고대도시와 피라미드로만 인식돼 왔던, 지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그 곳과 멀리 있었던 내가 최근 가장 많이 말하고, 듣고, 쓰는 이야기가 바로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 현장이다. 현장 취재에 익숙하지 않아서 '카이로 간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내심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곳에 있는 나를 떠올려봤다.

일단 '아랍어'를 모르니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곳엔 영어를 하는 이집트인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영어회화에 능숙하지 않으니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재차 걱정이 됐지만 사실 시위대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어쩌면 간단한 회화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무바라크는 물러나라", "나는 실직자였다", "이집트는 새로 태어나고 있다"와 같이, 그들의 눈빛과 몸짓으로 충분히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 이집트에 간다면, 피라미드와 박물관이 아닌, 타흐리르 광장, 그곳에 가야한다.

(당연한 얘기를....;;)

타흐리르 광장은 아랍어로 '해방 광장'을 뜻한다.

기사 읽기 :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가 사는 법 : ☞

타흐리르 광장 주변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고 한다. 기사에서 언급되는 이집트 박물관과 같은 주요 건물들도 보인다.
 그래픽/뉴욕타임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간 지속해온 철권 통치는 쉬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 (정말 많이 후퇴했음에도)

반정부 시위대는 무바라크의 퇴진, 오로지 그것이 목표다.




정부는 개헌위원회를 설립하고 공무원의 임금을 인상하는가 하면,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의 충돌과정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피해자에게 보상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줄줄이 유화책을 쏟아내는 듯.....)

하지만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하려는 게 이 시위의 주요 동력이었다. 그런데 이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주는 척 하면서, 그 개혁위원회를 무바라크가 '승인'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진/알자지라 방송

그래서 시위대는 타흐리를 광장을 떠날 수 없는 듯하다. 정부가 내놓은 협상안이라는 게 결국은 무바라크는 대통령 자리를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 15일째인 8일에도 광장에는 수만명이 몰려 들었다.

전날 석방된 와엘 고님이 시위 현장에 합류했다. 고님은 구글 임원으로, 반정부 시위 초기 페이스북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페이지 운영자였다. 그는 당국에 체포됐다가 12일만에 풀려났다. 그는 젊은 시위대 사이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타흐리르 광장에 나온 고님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거리에 나온 당신들이 영웅들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석방에 젊은층이 고무돼 다소 줄었던 시위대가 또 늘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전했다.

일부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루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들에게 생업을 버리고 보름이나 거리에 나와 있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 건물 옥상에는 시위를 지휘하는 '옥상 지도자'(rooftop leader)들이 있다. 이들은 젊은 층으로 건물 옥상에서 시위대를 이끈다. 시위대 스스로 현장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 자리에서 임명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이동전화로 소통하고 있다.

또한 시위 현장에는 남미 가수가 만든 노래 한곡이 시위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불려지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tSLWbIMxd88


한 커플은 타흐리르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2071037191&code=970209


어린 꼬마도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야밤에도 부모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이제 더이상 경찰이 무섭지 않다는 이야기다.)
광장, 그곳은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http://www.youtube.com/watch?v=K2866seHpWs

http://www.youtube.com/watch?v=Gkl76mIh8aA

배고픈 시위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거나 생필품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시위대는 현장에서 서로 '의지'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기도한다.


수만명의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다. 정부의 일부 개혁 조치에도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광장에 남은 사람들은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전까지 광장을 떠날 수 없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서로를 북돋운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은 언제든 유혈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군부가 8일부터는 외신기자들의 타흐리르 광장 접근을 막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허가증을 받은 기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서방 언론이 편향된, 혹은 곡해한 보도를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정부의 허가증'이라는 말이 무섭게 다가왔다.
시위대 안에서도 외신 기자들에 대한 반감도 드러나기도 한다. 

그걸 뒤로 하더라도 군부가 시위대 편에 선 것처럼 하면서 정부의 요구를 충실히 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군부가 인권 활동가들과 외신 기자(알자지라 기자도 포함) 체포하고, 시위대에게 해산하라고 종용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무력진압에 나서지 않지만, 그들의 침묵이 불편한 이유다. 시민들은 군부를 존경해왔다고 한다. 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영웅이었 듯이. 과거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세력이 군부이었기에.

향후 정국이 군부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데 군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군부가 '권력이 굴러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경찰들이 시민들을 고문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유튜브 사이트에 최근 게재된 영상(http://www.youtube.com/watch?v=o1R0qsT92AI)은 한 남성이 대로변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고스란히담고 있다.
 
이 남성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 양팔을 들고 재킷을반쯤 벗어 보였지만 이를 지켜보던 경찰은 곧바로 총격을 가했다. 


또 다른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CBJu58QSbKc)에서는 경찰차량이 시위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4∼5명을 치고 그대로 달아나는 장면이 공개됐다.시위 참가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경찰차량에 치여 쓰러지자 주위의 시민들은 당황하며 부상자들을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이 밖에도 어린이를 나무봉에 거꾸로 매달고 고문을 하는 영상이나 한 남성을 때리면서 경찰들끼리 웃는 영상도 유튜브 상에서 공개됐다. 이 영상들 모두가 이집트의 최근 상황인지 확인되진 않지만 경찰의 강경 진압 방식을 비난하는 여론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집트 반 정부 시위사태가 3주째로 접어든 8일 현재 시위 현장에서 숨진 시위대는  최소 273명이라고 인권단체들이 밝혔다.



최근 며칠 동안 정부가 야권과 대화 자리를 만들고, 헌법개혁 위원회 설립과 계엄령 폐지 등 정치적 개혁을 약속했다. 정부의 '민주화 로드맵'이란다. 무바라크가 대통령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데,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중동의 CIA(미국 중앙정보국) 맨이라는 데, 술레이만은 고문도 자행하는 냉철한 인물이고 무바라크의 그림자처럼 숨은 권력이었다는데, 과연 이 정부를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정부와 협상 자리에 나선 '야권'이라는 실체가 과연 반정부 시위대를 대표할 수 있는지, 야권 지도자라느니, 야당이라느니, 정치권에 있던 그들이 과연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시위대는 협상결과를 거부하고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협상'이 이집트 정국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미국 등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으로만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 마뜩잖다. 반정부 시위 초기에 지금과 같은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적었다. 민중의 뜻을 잘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미국 정보기관과 이스라엘 정보부조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의 봄을불러올 것이라고는 예측해 내지 못했다.
이들 정보 기관이 이집트 민중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랍 국가의 집권층 분석에는 탁월했지만 민심을 읽는데는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에 정치권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게 된다고 하더라도(제발 그러지 않기를), 시위대가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이로에 가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동영상도 뒤져보고 블로그도 뒤져본다. 한국 교민의 불안을 두고 선동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한
현재 이집트의 상황은 냉정하게 바라봐야하기도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 속, 그리고 곳곳에 모인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
광장에 서 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멀리서라도 '그곳'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이집트는 지금 이렇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많은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는 와중에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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