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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떠나기 위해선 돈과 용기가 필요했다”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 있으면 뭔가 어수선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렇고, 그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도 어수선하다. 정리도 되지 않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하고, 이 사람들은 삶에 진지한 것 같은데 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개는 이 드라마를 두고 "현대인은 저마다 어느 정도의 정신 질환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석한다. 어떤 일을 겪었든 그것은 마음의 병이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그런 지점을 비교적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면, 소설 <밤의 고아>(윤보인, 문학과지성사, 2014)는 침침하고 폐쇄적이며, 외적으로도 심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를 테면, 어두컴컴한 건물 한 채에 모여사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괴로운 과거의 연속이거나 마지못해 살거나 파괴를 위한 삶이거나, 흔히 가난한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다. 한때 기자로서 이상과 쾌락을 좇아 한 사람을 동경하다 결국은 자식을 잃은 후 다리 한쪽을 잃은 장애인으로 등장하는 '로'. 난쟁이 가족으로 태어났지만 키가 큰 여자 '류', '류'는 아이를 낳아 난쟁이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고, 그러나 그 난쟁이 가족의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해 평온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여자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어려서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후에 먹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져 버린 주유소 직원 '기'이고, '기'의 여동생은 남들이 보기엔 '막 사는 것처럼'보였지만, 삶의 의지를 지키지 못해 자살해버린다. 그리고 폐차장에 버려진 채 발견된 '여'는 '부모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소유하고자' 아이를 원하지만 매번 유산하고, 폐차장에서 평온을 느낀다. 어딘가 아프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의 인생은 얼룩져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들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이들은 거칠다. 과격하고, 때로는 범죄를 상상하기도 한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이 소설 속 등장인물과 같은 이들을 수없이 마주칠 터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들의 폭력성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타인에게는 아니다. 마음 속으로 타인을 향한 저주를 퍼붓고 혐오의 감정을 드러낼지언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폭력성의 근원은 무엇이고, 과연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 모두에게 있는 내면의 폭력성, 혹은 삶에 대한 두려움과 한편으로는 경외심 등을 이 등장인물들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막장 드라마라 할지라도 등장인물의 욕구는 삶에 대한 욕구와 사랑에 대한 갈구로 이어진다. 그게 너무 편협하게, 극단적으로 그려지니 문제지만.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 만으로도 삶의 충분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가도 어느 순간 치유의 손길도 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게 어떤 사건이나 어떤 순간보다도 그저 '사람'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 짐짓 생각한다.


이들이 삶에 대해서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다만 자신의 어린시절에서의 상처나 폭력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일터에서 보내면서, 삶이 무료해지는 순간이 쌓여가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하다.




"그 역시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었다. 떠나기 위해선 돈과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피로와 권태, 무거운 슬픔, 그것만이 전부였다."


등장인물 중 주유소 직원인 '기'가 하루를 마감하며 느낀 권태의 한자락. '기'는 이렇게 무책임하고 피해의식 속에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설 말미에 고백한다.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다"고. 인간으로서 도피에의 욕망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정당한 도피, 휴가. 그래 휴가를 앞두고, 기운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