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계절'이다.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며, 느낀 청초함이 '장마'를 '비의 계절'로 낭만적이게 만들어줬다. (실제로 장마가 낭만적이지 않다는 현실 감각이, 영화를 보며 더 낭만적인 환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 맘때 강원도 태백에 가면, 해바라기 축제가 열리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장마는 비의 계절이 되고 눅눅함은 선선함으로, 질퍽거림은 촉촉함으로,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한 매력적인 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때는 시간을 되돌려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 상상에 매료될 만큼 순순하기도 했었나 보다. ㅎㅎㅎㅎ)
(*분명 윤흥길의 <장마>를 읽으면서도 장마가 참 적절한 비유와 모티브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장마의 문학적 비유도 가능하다니.)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최근 다시 '비의 계절'의 느낌을 살려준 영화가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2013)이다.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홀로서기를 하려는 구두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과 잘못된 소문에 휩쓸려 힘들어 하고 있는 젊은 어른 여성의 만남. 많은 말을 하지도 않고, 부단하게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또 방대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들. 조금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상처받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고리로 연결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설정이 이 영화의 특별함으로 느껴졌다. (이 둘은 어쩌면 정말로 인연이었던 듯하다. 세상은 우연같지만, 실제론 필연에 의한 인연인 경우도 많으니까.)
무엇보다 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일상의 스케치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 같아서, 그런데 그게 왠지 짠한 느낌이 들어서. 누구나 성장하기 위해 고통을 겪는다. 그게 내부적인 이유든, 외부적인 이유든. 그래서 아파하고 한 걸음도 더 못나아갈 것 같은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게 고등학생이든, 20대 젊은이든, 그 이상의 기성세대든. 사람은 그래서 치유하기 위한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이 영화처럼, 그런 시간과 그런 사람이 마법처럼 나타나주면 좋으려만.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동안 OST를 찾아 들었다. 영화 제목이 왜 <언어의 정원>일까 생각도 했지만, 서로의 말들이 부딪혀서 흩어졌다가 의미가 통하기까지 그 시간과 사람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또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촉촉한 느낌의 제목, 신선한데 따뜻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의 렘브란트로 불릴 만큼 '빛'에 집착하는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상에 담긴 세상에서 빛이 난다. 비가 내리는데, 세상에서 빛이 난다. (어쩌면 이 순간 만큼은 현실을 긍정하고 싶어진다.)
올해 중부지방은 '마른 장마'라고 해서 6월부터 7월말까지 계속 무더운 날씨만. 어제 오늘 장맛비가 내린다. 신발에 물이 차오르고, 어깨에도 물기 머금은 공기가 스친다. 아, 비의 계절이구나. 그런데 현실은 너무 척박한 진흙텅이. 어느 구멍에서 낭만을 찾아야 하나. (이렇게 한가로운 생각을 해도 되나. 정말 그래도 되나.) 그래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순화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혹시나 촉촉한 영상이 보고 싶다면 두 영상을 다시 보면 어떨까.
빗방울 하나, 하나 똑똑 떨어진다. 그 빗방울이 호수 물결처럼 퍼지면서 하늘의 나뭇잎을 비추며 푸르게 물들어간다. 그 위를 내가 걷는다. 또박 또박.
힘을 내야지. 현실은 낭만이 아니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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