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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삶은 여행이라고 말한다. 삶 속에는 수많은 여행이 중첩돼 있다. 출발과 끝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도착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날(항상 날씨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복선일 때가 많다)  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 하며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다리 위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목격한다. 그녀를 살려낸 뒤 그레고리우스는 '운명'처럼, 그녀가 남기고 간 코트에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발견한다. 이 티켓이 그를 새로운 삶으로 데려가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이, 또다른 한 사람의 일생으로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왜 리스본행인가.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단어의 금세공인>

"우리 안에 있는 삶의 작은 부분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머지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시간들과 함께...열려 있으며 완성되지 않은 자유 안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그리고 납처럼 무거운 불확실성 안에서 ...소망일까...마치 꿈같고 향수 같은..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이는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 그는 포르투칼 카네이션 혁명[각주:1] 때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이 붉은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왔다. 장례식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오켈리(오거스트 딜)와 연인 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온 뒤 프라두의 동생을 찾아갔지만 책의 저자인 프라두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라두의 묘비에 쓰인 말이 인상적이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이 한 문장이 프라두의 삶을 정리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지 혁명을 꿈꾸는 청년, 으로 짧게 정리하기엔 프라두의 인생은 깊고 치열했다. 프라두는 의사이자 철학자이자 작가이자 한 여인을 사랑한 젊은이였음을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으로 퍼즐조각처럼 맞춰진다.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 거리를 거닐다 자전거 탄 행인과 부딪혀 안경이 깨지고 만다. 그리고 안경점에서 만난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이 프라두와 저항군 동지였던 주앙(톰 커트니)의 조카였고,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런 우연적인 요소가 여행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어차피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부터가 우연이었고, 일상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동기였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삶에 이끌린 것은, 자신의 일생이 무료하고 자신이 재미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그게 지루하다는 사실 자체를 책을 읽으면서 자각한 것 같다.) 그는 "지루하다"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했다. 강렬한 삶에 대한 열망이 그에게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 그것을 건드린 것일 뿐이다. 그가 리스본에 오면서 안경을 바꾸고 말끔히 면도를 하고, 프라두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의 얼굴도 더 밝아지고 유쾌해짐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영화는 단지 그레고리우스를 통해 프라두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프라두와 관련이 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그 당시의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면서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구성이다. 현재의 인물에게 과거의 일을 끌어내, 오해와 진실의 실마리를 푸는 것과도 같다. 삶이 여행이라고 해서 모두가 낭만적이고 즐겁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독하게 포기할 수 없는 감정들도, 안고 가야하기에.


왜 리스본행 열차 티켓이었는가. 스페인에 살고 있는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칼의 혁명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시대적 환경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고 싶었던가. 시대적 환경을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삶을 말이다. 다리 위에서 만난 젊은 여자는 리스본 학살자의 손녀라는 반전이 의미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그런 괴로움 속에 있을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아니면 내 삶이 더 열정적으로 흐르기를 바란다면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더 각별하다. 단지 열심히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마리아나와의 작별의 시간. "왜 더이상 머무르지 않나요?" 


다만 이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올까. 스스로 일상을 떠날 수 있는, 열차 티켓을 끊을 수 있을까. 리스본이 아닌 어디라도.





  1. 좌파 군사 쿠데타와 함께 포르투갈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다. 1974년 4월 25일 자정 직후, 포르투갈의 국영 라디오에서는 민중 저항 가수 제카 아폰수의 노래 「Grandola, Vila Morena」가 흘러나왔다. 무심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청취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 곡은 마르첼로 카에타누 총리의 우파 정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힌 아폰수가 부른 금지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군의 젊은 장교들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이 노래는 혁명 쿠데타 개시 신호였던 것이다. 그날 밤, "구국 운동(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MFA)"은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였다. 잠에서 깬 포르투갈 국민들은 쿠데타가 발발하였으며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줄 것을 요청 받았다. 집안에 머무르라는 MFA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리스본 시내에 군중이 운집하였다. 많은 시민들이 꽃 시장에서 사온 빨간 카네이션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거리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 이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빨간 카네이션은 거의 완전한 비폭력 혁명을 상징하게 되었다. 카에타누는 브라질로 망명하였으며, 존경받는 장교 안토니오 스피놀라 장군이 집권하였다. 카네이션 혁명 이전 포르투갈은 거의 40년 가까이 안토니오 살라자르가 세운 "신 국가"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제국에 집착한 이 체제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의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스피놀라와 좌파 MFA는 물러났으며, 격동기를 거쳐 마침내 1976년,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네이션 혁명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2009.8.20, 마로니에북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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