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가 늘 고비다. 고개는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점점 더 진출하고, 허리는 자연스레 둥그렇게 말아지는, '바르지 못한 자세'의 절정이 되는 시기. 여느 직장인들이나 느끼는 피곤의 절정. 단 것도 당기고, 머리도 멍해지고, 일의 처리 속도와 상관없이 하염없이 피곤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드는 시기. 그래서 가끔은 '내가 컴퓨터처럼 기계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는, 그런 때.
그럴 때, 이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년 봄엔가 읽은 서유미의 <당분간 인간>(2012, 창비)(단편소설들을 모아 낸 소설집으로, 여러 소설 중에서도 '당분간 인간'이란 소설이 특히 더 기억에 남았다.)의 주인공처럼 내가 "부스러기가 되거나 물컹물컹 액체 덩어리가 돼서 녹아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다소 공포스러운 걱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 만큼 이 소설의 설정은 너무나 명징한 메시지를 주었다. 우리가, 인간이 자연에 속한 온전한 생명체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 몇번이나 찾아왔다. 직장도 곧 사람들이 꾸리는 삶의 장소인데, 그 안에 있으면 나는 사람이지만 '일의 영역'인 만큼 스트레스와 피로의 근원임에도 틀림없다. 누군가의 괴롭힘이나 일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삶의 유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이 소설을 보며 나를 보고 사람들을 보고 현대사회의 슬픈 인간의 자화상을 보았다.
<당분간 인간>에 등장하는 인물 O. 월급을 떼인 채로 실직자가 됐다가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 O는 친구 Q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O는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는 증상이 나타났고, O가 새로 들어간 회사의 전임자는 몸이 물렁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회사를 그만뒀다. O는 결국 전임자가 물컹한 젤리가 돼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Q는 결국 O가 와르르 부서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두 사람의 증상의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라고 의사는 진단한다. 그리고 그런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고. 스트레스라는 옷을 입고는 수많은 강박이, O와 O의 전임자를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당분간 인간, 이었을 뿐이었다. 회사는 O의 전임자처럼 너무 물러터진 인간이나 O처럼 융통성이 없는 인간을 원하지 않았다.
Q는 O의 경직된 얼굴을 보고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지만, 단절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사실 부스러기도 좀 떨어져"라는 증상은 아주 경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곧 O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따라오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 힘든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잡아내기 어려운 건 우리가 타인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기엔 너무 척박한 환경에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요즘 얼굴과 목이 딱딱하게 굳고 심할 경우 갈라지거나 금이 간다고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반대로 몸에 힘이 없고 물렁해진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인간사회에서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 사회, 이 소설이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라도 부서질 수도, 물렁해져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분간만 인간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론은 내 몸이 부서지기 전에, 녹아버리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살아남아야지 하는데, 그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삶이 내 의지대로 되는가 라는 막연한 질문 앞에 멈춰선다. 사람들이 힐링에 열광하는 건, 아니 힐링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건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힐링이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주말에 그대도 나도 모두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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