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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1957년 미국 배심원 제도를 다룬 법정 영화다. 살인 혐의를 쓴 18살 소년에 대한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이 유무죄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화는 재판 과정이나 소년에게 실제 벌어졌던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배심원들의 말을 통해서만 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배심원은 사람이다. 곧 12명이 같은 재판에서 같은 증거를 보고, 같은 증인의 말을 듣고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들을 같이 들었음에도 판단의 근거는 저마다 다르게 가지게 된다. 영화는 11명의 배심원이 유죄라고 판단하고 1명이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장일치'가 나오기까지 이들은 토론을 벌이게 된다. 유죄에 가까워보이는 정황과 증거, 증인이 있지만 그것들이 정말 이 소년을 살인범으로 확정할 만한 정확한 증거가 되는가를 하나씩 질문을 함으로써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화는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영역을 짚어냄으로써 우리가 실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물론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법정에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유죄가 아닐 가능성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가능한 한 모든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8세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2명의 배심원들의 발언을 통해 재판에서 나왔던 증거와 증인, 정황 등이 제시된다. 또 12명의 배심원은 각각의 캐릭터가 있다. 이들은 직업과 가정사, 성격, 신념, 출신지, 나이 등으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눈도 다르게 된다. 배심원들이 토론을 벌이는 날은 무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상황. 이들은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계속 토론을 벌여야 한다. 유죄 11 대 무죄 1이라는 시작은, "다수의 결정에 의심을 제기하는 소수"의 구도를 보여준다.

처음엔 유죄라고 생각했던 배심원들도, 자신의 유죄 판단의 근거가 무너지면 무죄라고 입장을 바꾼다. 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고, 이들에게는 최소한 정확하지 않은 근거로 소년에게 유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영화에서는 배심원들에게 번호를 부여한다. 배심원장(배심원 1, 마틴 발삼)은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로 사회를 맡는다. 배심원 2(존 피들러)는 회사원이고 소심한 편이다. 배심원 3(리 J.콥)은 통신회사 사장으로 아들과의 갈등을 겪었던 인물이다. 배심원 4(E.G. 마샬)은 주식거래 중개인으로 보수적이며 확신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배심원 5(잭 클러그먼)은 빈민가 출신이고 배심원 6(페인트 공)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중시하고, 배심원 7(잭 워든)은 세일즈맨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배심원 8(핸리 폰다)은 건축가로 최초의 의심을 던진 인물이다. 배심원 9(조셉 스웨니)는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관찰력이 뛰어나다. 배심원 10(에드 버글리)은 차고를 소유한 인물로 빈민가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인물이다. 배심원 11(조지 보스코벡)은 시계공이며 신중하다. 배심원 12(로버트 웨버)는 광고계에서 일하는 이로 토로에 관심이 없고 우유부단하다.

 

이들의 캐릭터는 영화 전반부터 후반까지 그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는 또 사건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배심원 8은 사실상 주인공으로 그의 의심으로 토론이 벌어진다. 그는 사건의 중요한 증거로 제시된 소년의 '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가슴을 찌른 그 칼이 소년의 칼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는 소년의 동네에서 범행도구로 쓰인 칼과 유사하게 생긴 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구한 칼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것은 100% 확실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건축가라는 그의 직업이 '불완전성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의심은 직업과 상관없이 할 수 있우 것이다.) 그는 증인이라는 윗집 노인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범행시각 고함을 듣고 도망치는 소년을 봤다는 증언에 대해 실제 가능한 일이었는지 재현함으로써 증언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이런 과정이 건축가가 완전한 건물을 지어가는 과정과 흡사해보였다.

 

 

 

가장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 3은 자신의 아들과 갈등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이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증거들의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그것들을 무시하려 애쓴다. 또 배심원 10은 단순히 빈민가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에, 소년이 유죄라고 확신했고, 배심원 9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관찰력으로 증인들의 허점을 읽어냈다. 단순히 토론이 지겨워서 자신과 상관없다는 이유로 무죄나 유죄가 중요하지 않는 배심원도 있었다.

 

토론을 벌일수록 무죄라고 판단하는 배심원의 숫자가 늘어난다. 소년이 왜 범행 이후 3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왔는가, 소년의 범행 현장을 봤다는 이웃집 여성의 증언은 믿을 만한가. 그 여성은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지만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즈음엔 침실에서 안경을 벗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이 새로운 의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소년의 인생을 결정할 판단"은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의심을 통해 확실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결국 "소년이 진짜 범인이고 범인을 풀어주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증거와 정황들만으로 그 소년에게 유죄를 내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흑백영화, 폐쇄적인 공간, 찌는 듯한 무더위. 무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들이 늘어나서 과반을 넘기기 전에 퍼붓는 소나기. 영화는 그 이외의 외부환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발언만으로, 그들의 짧은 행동과 표정 만으로 극을 진행한다. 그래서 흡사 연극 무대를 보고 있는 듯도 하다. (실제로 연극 극본으로 만들어졌다.)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 의심들을 증명해낼 때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바는, 사실 소년이 실제 무죄이냐 유죄이냐보다는 그러한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배심원에 돼서 사건을 판단할 수도 있고, 우리의 머릿속에는 배심원 여러 명이 앉아서 증거들의 완전성을 따져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판단도 불완전하다는 것이고, 둘다 불완전하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확신과 신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없으면 그것이 곧 진실인 것처럼 된다. 그것이 내 편견이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 잘못된 판단이 될 수 있음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민주주의 안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판단에 밀려 중우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수 안에서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여성과 다른 인종 등의 의견도 더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