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알음2014.10.19 19:43



지난해 결혼을 하고, 올핸 아이를 낳아 어느덧 아기 엄마가 돼버린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한 지방의 기차역에서 이 책을 샀다. 기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고, 무난히 읽어나갈 소설이면 좋겠다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삶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해서, 풋풋하고 아련하고, 때론 어른스러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소설 속 화자들이 중년 남성’, 그것도 여자없는 남자들이라서 도대체 감정이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사고하는가, 이들에게 여자는 절대적이면서도 또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필요한 대상이고, 그런데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대개는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실제로 현실에서 여자 없는 (중년의) 남자들이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이 소설 속의 남자들은 좀 이상했다. 완전함 속에 불완전.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편집이다. 사랑하는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무념하게 무대에 오르는 배우 가후쿠와 그의 전속 운전 기사 미사키가 주고 받은 이야기.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수많은 여성들과 적당히 만나오던 50대 성형외과 의사 도이카가 깊은 사랑에 빠진 후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능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이야기. 부인의 외도를 목격하고 도피하듯 마련한 술집에서 기노라는 주인공이 자신을 지켜보던 남자 가미타와 어떤 여성과의 만남을 풀어나가는 이야기 등등.

 

이런 단편 중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반대 버전, 그러니까 어느날 깨어보니 자신이 인간이 되어 있는 상황. 인간으로 먹는 법, 옷을 입는 법, 여자를 대하는 법 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꽤 재미있다. 텅 빈 집안에 잠자 혼자였고, 열쇠를 고치겠다며 한 여성이 엉거주춤 집으로 온다. 바깥 세계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검열의 시대. 엄혹한 시기에도 방문을 고치는 일, 이런 사소한 일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대목은 왠지 숙연하게 만든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친구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한 의식을 치르고 아이를 낳아 하루 하루, 그 하루속에서 또 하나 하나 삶의 단계를 차분히 거치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친구처럼 나도 그저 하루 하루를 자잘한 일들을 채울지언정 어떤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에 예속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뭉클해졌다. 세계가 미치면, 인간도 미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인간의 정신의 영역은 때로 그 세계의 미침에서 자신의 정상성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무언가를 꼬박꼬박 해내고, 그것이 인간의 사회가 언젠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제정신을 지키기에 팍팍한 사건들이 터지고 상처받기 쉬운 사회다. 그러니 스스로 자잘한 일들을 잘 해내는 것으로서, 맞설 수밖에. 우선 그것부터라도 하는 수밖에.(이건 결코 소극적인 저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그 길마다 차곡차곡 자잘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문득 고맙기도 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세계는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저 인간다움의 세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Posted by sokhm
알음알음2014.03.06 22:21



가만히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볼 때, 그 길까지 오게 된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대부분 '우연'일 때가 많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인생이라고 누구나 말하듯이. 그 선택이 자신의 몫일 때도 있지만 타인에 의해 강요받을 때도 있을 것이고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경우의 수의 총합이 현재에 이른 자신일 텐데, 어떻게든 일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떤 강한 흐름이 그를 하나의 길로 가게 만들고, 흔들리지 않게 하고, 내면에서도 강한 욕구가 일어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그의 이름처럼(쓰쿠루는 일본어로 '만들다'는 뜻) 역을 좋아하고, 그래서 역을 만들기 위해 나고야에서 도쿄에 있는 대학을 오게 되며, 역을 만들기 위해 철도회사에 들어가서 역을 고치면서 살아간다. 자신도 왜 역을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주어진 조건'과 같았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에 '기이한' 경험을 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완전한 공동체에 속했다. 자신을 제외한 4명의 친구(남2, 여2)는 아카마쓰, 오우미, 시라네, 구로노-빨강, 파랑, 흰색과 검은색- 등 이름에 색채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 쓰쿠르는 자신을 색채가 없는, 개성이 없는 인물로 인식한다. 문제는 그가 역을 만들기 위해 도쿄로 대학을 오게 됐고,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그 그룹으로부터 '추방'을 당했다는 것이다. 쓰쿠루는 이유도 모른 채 공동체에서 추방당했고, 캄캄한 암흑의 바다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힘든 시절을 지나 서른여섯살이 됐다. 그리고 두 살 연상의 사라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16년 전의 일로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그는 16년 동안 그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례에서 그는 오해와 아픔의 고리를 찾아내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맞다. '역을 좋아하고 역을 만든다'는 한정된 목적은 그의 인생 진로를 눈에 선하게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 선택한 길에서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발생하면서, 그의 인생은 간결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가 목적을 잃어버렸다거나 목적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하게 보이는 삶, 이란 것도 삶의 수많은 결 중에 그저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지 총체적인 삶을 전부 간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목적'이 하나가 아니니까 더 복잡다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겠지.







+) 이 소설에서는 <르 말 뒤 페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로가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곡). 이 말은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으로 정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말. 향수라고도 번역된다. 책에서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알음알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혹하는 플라스틱  (5) 2014.03.11
사물의 심리학  (0) 2014.03.07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0) 2014.03.06
서른 넘어 함박눈  (0) 2014.02.09
천국보다 낯선,  (0) 2014.01.05
“사장이 나빴어”  (0) 2013.12.10
Posted by sok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