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小2014.09.14 15:33



봄날이면 가장 생기가 돋는 식물 중 하나로 버드나무가 있다. 버드나무가 반짝이면, 햇살도 따라 반짝인다. 여름이면 이 나무의 잎들이 더 크게 자라 짙은 초록으로 변하고, 그러면 그것은 누군가 쉬어갈 그늘이 된다. 연두빛 버드나무 잎을 보며 '내 인생의 이 시절도 저렇겠지' 했던 게 대학 때의 일이다. 청춘에게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늘 그렇게 하나의 의미가 되어 가슴을 쿵하게 찍고 가곤 한다. (나는 아직도 청춘이지만, 가소롭게도 더 젊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키우고 있다.) 이제는 연두빛 잎이 차츰 색을 더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시절을 지나는 중이다.






영화 <족구왕>(2013, 상영 중)을 보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웃어댔다. 주인공 '홍만섭'(안재홍 분)의 '실제 같은 연기'에 그만 혼이 쏙 빠진 듯했다. 세간에 '재밌는 영화'라는 호평이 자자하다는데, 과연 그랬다. 만섭이가 연두색 버드나무 잎처럼 생기가 넘쳐 보는 내내 흐뭇한 누나 미소를 짓게 했다. 그것은 '그 시절을 지나온 자의 여유'이기도 하고, 부러움이기도 했다. 또 반대로 그가 던지는 질문을 받아들고 조금 설렜다. '앞으로 어떻게 살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니' '네 꿈은 무엇이니' 등등의 유치하지만, 중요했던 질문 말이다.


군대에서 전역한 만섭은 학교로 복학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족구를 할 족구장이 없어진 걸 본다. 롬메이트 형은 '연애 말고' '족구 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한다. 천사같이 예쁜 안나는 '여자들은 족구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섭은 "재밌으니까" 족구를 하고, "남들이 뭐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감추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한다. 만섭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좇는다. 학자금 대출 이자가 밀려 복학 학기 등록금을 내지 못해 수강등록이 취소됐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이 다른 남학생을 좋아해도,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만섭이란 인물에겐 묘한 매력이 있다. 옆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은, 이 사람이라면 무엇이라도 잘 해낼 것 같은. 물론 그의 외부조건은 현실에서 '루저'의 영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섭은 그럴듯한 말로 상대로 꾀이지 않는다. 그저 아마 만섭이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청춘의 모습 같았다. 대학의 취업률을 걱정하고, 족구를 하면 면학분위기를 헤친다며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미워하게 된 건 청춘 탓이 아니라 사회 탓이니까. 누군가 "족구장을 세우자"고 목소리를 냈을 때 외면했던 이들이 어느날 줄지어 서명을 하게 된 것처럼, 이들은 유연하다. 극중 영화 '백투더퓨처'가 하나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데, 미래에 있을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고. 진부한 메시지지만, 만섭이가 말해서 진한 국물을 마신 것처럼 속이 따뜻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만섭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의 궁합. 그리고 유쾌한 진행. 그래서 가볍게 미소지을 수 있는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결말(직접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듯)이다. 초록이 짙게 물들수록 버드나무 잎은 더 아래로 쳐진다. 그리고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 정도만 해내도 어딘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에 잘 붙어서 제 때에 맞게 제 농도로 물들어가는 것.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족구왕>의 매력  (0) 2014.09.14
비의 계절  (0) 2014.07.24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1) 2014.06.30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Posted by sokhm
小小2014.07.24 14:58


'비의 계절'이다.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며, 느낀 청초함이 '장마'를 '비의 계절'로 낭만적이게 만들어줬다.  (실제로 장마가 낭만적이지 않다는 현실 감각이, 영화를 보며 더 낭만적인 환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 맘때 강원도 태백에 가면, 해바라기 축제가 열리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장마는 비의 계절이 되고 눅눅함은 선선함으로, 질퍽거림은 촉촉함으로,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한 매력적인 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때는 시간을 되돌려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 상상에 매료될 만큼 순순하기도 했었나 보다. ㅎㅎㅎㅎ)




(*분명 윤흥길의 <장마>를 읽으면서도 장마가 참 적절한 비유와 모티브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장마의 문학적 비유도 가능하다니.)


2014 태백 해바라기 축제 정보 보러가기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최근 다시 '비의 계절'의 느낌을 살려준 영화가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2013)이다.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홀로서기를 하려는 구두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과 잘못된 소문에 휩쓸려 힘들어 하고 있는 젊은 어른 여성의 만남. 많은 말을 하지도 않고, 부단하게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또 방대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들. 조금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상처받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고리로 연결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설정이 이 영화의 특별함으로 느껴졌다.  (이 둘은 어쩌면 정말로 인연이었던 듯하다. 세상은 우연같지만, 실제론 필연에 의한 인연인 경우도 많으니까.)


무엇보다 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일상의 스케치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 같아서, 그런데 그게 왠지 짠한 느낌이 들어서. 누구나 성장하기 위해 고통을 겪는다. 그게 내부적인 이유든, 외부적인 이유든. 그래서 아파하고 한 걸음도 더 못나아갈 것 같은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게 고등학생이든, 20대 젊은이든, 그 이상의 기성세대든. 사람은 그래서 치유하기 위한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이 영화처럼, 그런 시간과 그런 사람이 마법처럼 나타나주면 좋으려만.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동안 OST를 찾아 들었다. 영화 제목이 왜 <언어의 정원>일까 생각도 했지만, 서로의 말들이 부딪혀서 흩어졌다가 의미가 통하기까지 그 시간과 사람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또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촉촉한 느낌의 제목, 신선한데 따뜻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의 렘브란트로 불릴 만큼 '빛'에 집착하는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상에 담긴 세상에서 빛이 난다. 비가 내리는데, 세상에서 빛이 난다. (어쩌면 이 순간 만큼은 현실을 긍정하고 싶어진다.)


올해 중부지방은 '마른 장마'라고 해서 6월부터 7월말까지 계속 무더운 날씨만. 어제 오늘 장맛비가 내린다. 신발에 물이 차오르고, 어깨에도 물기 머금은 공기가 스친다. 아, 비의 계절이구나. 그런데 현실은 너무 척박한 진흙텅이. 어느 구멍에서 낭만을 찾아야 하나. (이렇게 한가로운 생각을 해도 되나. 정말 그래도 되나.) 그래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순화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혹시나 촉촉한 영상이 보고 싶다면 두 영상을 다시 보면 어떨까.


 

빗방울 하나, 하나 똑똑 떨어진다. 그 빗방울이 호수 물결처럼 퍼지면서 하늘의 나뭇잎을 비추며 푸르게 물들어간다. 그 위를 내가 걷는다. 또박 또박. 


힘을 내야지. 현실은 낭만이 아니라고 해도.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족구왕>의 매력  (0) 2014.09.14
비의 계절  (0) 2014.07.24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1) 2014.06.30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Posted by sokhm
小小2014.06.30 18:57



"요즘 영화들은 시시하다. 속편이거나 리메이크이거나"


라고 스스로 고백한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트랜스포머'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어쨌든 '영혼이 있는 로봇을 만난다'는 것. 로봇과 인간세계의 공존, 혹은 로봇계의 악당과 인간계의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스토리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영웅시리즈가 그렇지만. 늘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미모에 대한 관심도 지나치다 싶고. 그럼에도 '볼거리'라는 의미에서 칭찬을 받았던 시리즈물이다. 이번에도 역시, 옵티머스 프라임을 보면 왠지 모를 경건함이 느껴진다. 귀여운 범블비가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던 시대는 가고, 옵티머스 프라임이 제1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뭔가 특별한데, 늘 죽지 않는다. "창조자에게 경고한다. 지구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거나, "밤하늘이 별이 됐다고 생각하라"는 마지막 멘트는 굳이 필요없을 듯도 한 멘트.....(;;;)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의 구성은 좀더 복잡해졌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멸종한 시대'를 다룬다. 공룡들이 소행성과의 충돌로 사라졌다고 들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우주 로봇의 점령기였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그리고 '창조자'는 옵티머스 프라임을 비롯한 창조물들이 사라지길 바란다. 인간은 더 많은 발전을 바라며, 이제는 오토봇이나 옵티머스 프라임과 같은 영혼이 있는 로봇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던 이 영화의 특징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뻗어나갔는가를 또한 보여주며, 이제는 '창조자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트랜스포륨이다. 트랜스포머들의 구성성분인 이 물질은 마음대로 변형가능하다. 총기가 될 수도 있고, 스피커가 될 수도 있다. 이 물질을 양껏 생산하기 위해 '씨드'라는 폭발물을 노리는 게 기업가 죠수아(스탠리 루치)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특히 영원하거나, 소멸하지 않거나, 만능이거나, 무한변형이 가능하거나 등등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인간의 생과 우주와 자연이 무한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듯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하겠다는 과학의 맹신이 있다. 기술의 발전이나 어떤 원리의 발견만으로도 인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논리. 그것을 드러냈기에 사실 영화 제목의 '사라진 시대'는 공룡이 살던 쥐라기 시대가 아니라 현대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도 했다. 


물론 인간은 그러한 생각과 발전이 가지고 올 '위험'에 대해서도 인지한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도 감수한다. 고물더미에서 낡은 트럭을 사와 옵티머스를 살려낸 발명가 케이드 에거(마크 월버그)가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인간의 배신과 욕망 앞에 더이상 인간을 수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에거는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나중에 옵티머스 프라임도 그들의 가능성을 지키라고 오토봇들에게 명령한다.) 에거는 "인간은 원래 그렇다. 늘 실수를 한다. 내가 고물더미에서 트럭을 사와 팔 요량으로 그것을 고쳤고, 결국 옵티머스 프라임을 살릴 수 있었다"며 말한다. 평범한 발명가가 옵티머스 프라임을 도와 지구를 구한다는 건, 미국 영웅 영화에서의 뻔한 설정이고, 또 그가 어린 딸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설정도 뻔한 설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전편보다 더 재밌다고, 더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현대의 트랜스포륨은 자동차로 변신하는데, 멸종된 시기의 트랜스포륨으로 구성된 로봇들은 공룡으로 변신한다는 것도 창의적인 것인지, 웃긴 것인지.








영화 시간은 약 3시간(164분). 길다. 그래도 볼 만하다. 하지만 예전 편보다 재미가 없다. '웃긴 장면'도 별로 없고, PPL도 눈에 거슬린다. 중국 대륙과 홍콩까지 무대를 옮겨 '중국 비중'을 높이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너무 많은 것을 때려 부수고 없애고, 제거하고, 싸우느라 도시가 불타고 자동차 수십대가 엉퀴어도 영화는 제 갈길을 간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들은 희생해도 된다는 것은 악당이나 영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ㅠㅠ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족구왕>의 매력  (0) 2014.09.14
비의 계절  (0) 2014.07.24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1) 2014.06.30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Posted by sokhm
小小2014.06.19 18:49



잔잔하면서 유쾌한 멜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대만 영화 <하이자오 7번지>를 추천하게 될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스토리 구성과 인물 캐릭터들이 나온다. 너무 전형적인 영화인데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2010년 국내 개봉한 <하이자오 7번지>는 대만에서 큰 흥행을 거둬, 국내에서도 흥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그렇지는 못했다.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일까).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사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대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tvN <꽃보다 할배>에서 대만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대만이 인기 여행지로 떠올랐다고 들었다. 대만에서 맛거리, 볼거리, 음악 등등도 인기라고. 그러나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화도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좋은 티켓이다. 이 영화에선 또다른 대만영화 <청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풋풋하고 신선한 매력은 없었다. 이 영화는 대만 남부 해안가의 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와 60년 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 그리고 이 지역에서의 음악회를 위한 밴드 결성으로 만나게 된 새로운 연인의 이야기 등이 큰 줄기를 이룬다. 여자 주인공이 일본인으로 나오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잔잔한 로맨스(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는)라는 느낌도 있다.





대강의 스토리는 이렇다. 밴드에서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록음악의 꿈을 꾸던 청년 아가(범일신 분).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새 아버지는 헝춘 지역의 읍장이 됐다. 아가는 우편 배달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우연히 소포 하나를 뜯게 된다. 60년 전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남자의 러브레터. "널 버리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거야"라며 망망대해를 떠나 일본으로 가는 배를 주저앉히고 싶은 남자의 애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가는 어느새 편지를 주인에게 배달하는 것도 잊은 채, 그 사랑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음악회가 열리게 되고, 아가는 일본 유명가수와의 공연을 위해 마을 사람들로 급조된 아마추어 밴드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만나는 여자 주인공은 행사를 돕는 일본 여성 토모코(다나카 치에). 둘은 태격하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헝춘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민 5명이 밴드에 동참한 뒤 갈등과 어려움 끝에 성공적인 공연을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가는 수십 년 동안 전달되지 못했던 한 일본인 남자의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준다. 



안타까운 건 너무 뻔한 얘기라는 거다. 뻔한 얘기지만 재밌고 색다르거나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 그래도 영화 전개가 너무 뻔하다. (아흑) 그래도 잔잔하고 유쾌한 영화를 원한다면, 추천할 수 있다. 이런 영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오히려 세상이 너무 심각하고 충격적인 반전이 있으며, 슬픔과 괴로움이 무겁게 느껴질 때, 그저 이웃과도 아웅다웅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좋아하고 아끼고 조화를 이뤄서 뭔가를 만들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질 때' 말이다.



방황하는 청년 아가의 캐릭터, 우왕좌왕 허둥대지만 이쁘고 착한 토모코의 캐릭터. 어딘가 모자라지만 그래서 서로 아웅다웅하지만 결국엔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주민들의 캐릭터. 이런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지만, 영화 전체의 스토리엔 그 남자의 편지가 있다. 이 편지엔 사랑이 있고, 아련함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식 러브레터.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한 사람을 그 만큼 그리워해본 적이 있을까.









"지금 이 배를 지나는 송어에게 내 그리움을 함께 보낼게. 너의 아버지가 송어를 잡아서 네가 맛보게 되길 바라. 나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을거야"



(+)

참고로 위덕성 감독의 이 영화는 대만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대만 영화의 거장인 허우샤오셴과 에드워드 양과 같은 감독은 유럽 영화계에서 인정 받은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대만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는데, <하이자오 7번지>는 달랐다. 2008년 대만 개봉 당시 '색,계'(2억6000만 대만달러)는 물론 대만 영화 최고 흥행작인 '폴리스 스토리3'(3억1000만 대만달러)의 기록을 깨고 5억3000만 대만달러(한화 약20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대만의 주요 영화제인 금마장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올랐다.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의 계절  (0) 2014.07.24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1) 2014.06.30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필로미나의 기적  (0) 2014.05.25
Posted by sokhm
小小2014.06.13 12:57



삶은 여행이라고 말한다. 삶 속에는 수많은 여행이 중첩돼 있다. 출발과 끝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도착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날(항상 날씨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복선일 때가 많다)  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 하며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다리 위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목격한다. 그녀를 살려낸 뒤 그레고리우스는 '운명'처럼, 그녀가 남기고 간 코트에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발견한다. 이 티켓이 그를 새로운 삶으로 데려가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이, 또다른 한 사람의 일생으로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왜 리스본행인가.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단어의 금세공인>

"우리 안에 있는 삶의 작은 부분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머지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시간들과 함께...열려 있으며 완성되지 않은 자유 안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그리고 납처럼 무거운 불확실성 안에서 ...소망일까...마치 꿈같고 향수 같은..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이는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 그는 포르투칼 카네이션 혁명[각주:1] 때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이 붉은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왔다. 장례식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오켈리(오거스트 딜)와 연인 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온 뒤 프라두의 동생을 찾아갔지만 책의 저자인 프라두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라두의 묘비에 쓰인 말이 인상적이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이 한 문장이 프라두의 삶을 정리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지 혁명을 꿈꾸는 청년, 으로 짧게 정리하기엔 프라두의 인생은 깊고 치열했다. 프라두는 의사이자 철학자이자 작가이자 한 여인을 사랑한 젊은이였음을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으로 퍼즐조각처럼 맞춰진다.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 거리를 거닐다 자전거 탄 행인과 부딪혀 안경이 깨지고 만다. 그리고 안경점에서 만난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이 프라두와 저항군 동지였던 주앙(톰 커트니)의 조카였고,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런 우연적인 요소가 여행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어차피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부터가 우연이었고, 일상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동기였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삶에 이끌린 것은, 자신의 일생이 무료하고 자신이 재미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그게 지루하다는 사실 자체를 책을 읽으면서 자각한 것 같다.) 그는 "지루하다"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했다. 강렬한 삶에 대한 열망이 그에게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 그것을 건드린 것일 뿐이다. 그가 리스본에 오면서 안경을 바꾸고 말끔히 면도를 하고, 프라두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의 얼굴도 더 밝아지고 유쾌해짐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 http://www.nighttrain-film.com/


영화는 단지 그레고리우스를 통해 프라두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프라두와 관련이 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그 당시의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면서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구성이다. 현재의 인물에게 과거의 일을 끌어내, 오해와 진실의 실마리를 푸는 것과도 같다. 삶이 여행이라고 해서 모두가 낭만적이고 즐겁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독하게 포기할 수 없는 감정들도, 안고 가야하기에.


왜 리스본행 열차 티켓이었는가. 스페인에 살고 있는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칼의 혁명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시대적 환경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고 싶었던가. 시대적 환경을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삶을 말이다. 다리 위에서 만난 젊은 여자는 리스본 학살자의 손녀라는 반전이 의미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그런 괴로움 속에 있을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아니면 내 삶이 더 열정적으로 흐르기를 바란다면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더 각별하다. 단지 열심히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마리아나와의 작별의 시간. "왜 더이상 머무르지 않나요?" 


다만 이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올까. 스스로 일상을 떠날 수 있는, 열차 티켓을 끊을 수 있을까. 리스본이 아닌 어디라도.





  1. 좌파 군사 쿠데타와 함께 포르투갈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다. 1974년 4월 25일 자정 직후, 포르투갈의 국영 라디오에서는 민중 저항 가수 제카 아폰수의 노래 「Grandola, Vila Morena」가 흘러나왔다. 무심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청취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 곡은 마르첼로 카에타누 총리의 우파 정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힌 아폰수가 부른 금지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군의 젊은 장교들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이 노래는 혁명 쿠데타 개시 신호였던 것이다. 그날 밤, "구국 운동(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MFA)"은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였다. 잠에서 깬 포르투갈 국민들은 쿠데타가 발발하였으며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줄 것을 요청 받았다. 집안에 머무르라는 MFA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리스본 시내에 군중이 운집하였다. 많은 시민들이 꽃 시장에서 사온 빨간 카네이션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거리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 이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빨간 카네이션은 거의 완전한 비폭력 혁명을 상징하게 되었다. 카에타누는 브라질로 망명하였으며, 존경받는 장교 안토니오 스피놀라 장군이 집권하였다. 카네이션 혁명 이전 포르투갈은 거의 40년 가까이 안토니오 살라자르가 세운 "신 국가"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제국에 집착한 이 체제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의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스피놀라와 좌파 MFA는 물러났으며, 격동기를 거쳐 마침내 1976년,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네이션 혁명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2009.8.20, 마로니에북스) [본문으로]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1) 2014.06.30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필로미나의 기적  (0) 2014.05.25
허브농장에서_원주 허브팜  (0) 2014.04.13
Posted by sokhm
小小2014.06.02 14:36



기술의 발전을 목격하면서,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다만, 기계가 '욕망'이란 것을 가질 수 있는가. 늘 욕망을 가진 인간이 최첨단 기계를 장악함으로써, 기계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시도하는 자의 도구가 되었을 뿐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인간이 곧 기계가 된다는 설정은 상상할 수 있는데, 그동안 상상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영화 '트랜센던스' 이야기다. 이 영화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세상의 변화(어쨌든 더 나은 환경과 인간의 삶을 위한)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파괴가 아니라 변화를 꿈꾸고, 새로운 성장과 치유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된 인간은 끔찍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종교적 부활처럼 보이는) 설정은 상상이라기보다는 너무 허무맹랑해서 그 순간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정말 실현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인지, 기계가 된 인간이라는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이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 설정으로 인해 어떤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궁금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 인간의 의식도 데이터화할 수 있는가


 단순히 인간이 처리하기 힘든 수식이나 정보처리 등의 일을 하는 인공지능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하면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는 '트랜센더스'라는 새로운 슈퍼컴퓨터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리고 3명의 천재 과학자가 등장한다. 트랜센더스의 존재를 믿고 개발하는 윌(조니 뎁 분), 그의 부인이자 과학으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에블린(레베카 홀 분), 그리고 이 두사람의 친구이자 과학의 발전과 동시에 그것이 인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맥스(폴 베타니 분)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테러조직 RIFT. 윌이 테러 조직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되자 에블린과 맥스는 윌의 의식을 데이터화하고, 마침내 윌은 슈퍼컴퓨터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컴퓨터는 온전히 윌인가, 윌이 아닌가.




http://www.transcendencemovie.com/post/70628658319





# 기계가 된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는 부활도 가능한가


 윌은 기계된 이후에는 주식시장이며 부동산이며 수많은 금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돈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 물론 에블린이 추진하지만, 실제로는 윌이 벌이는 일이다. 태양력 발전을 이용해 막대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도모한다.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윌이 만든 프로세스는 심지어 물과 공기 중으로 복제돼 나간다.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이 눈이 보이고, 다리를 절룩거리던 사람이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걷고, 체력이 약했던 사람이 갑자기 삼손처럼 힘이 세지고, 결국에는 죽었던 윌이 조직재생이란 기술로 다시 살아나는 것까지. 이것은 마치 성경의 한 장면과 같다. 신의 섭리가 닿은 곳에서 벌어질 법한 구원과 영생의 이미지가, 현실이 되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 거느린 과학의 영역에서. 그래서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과학이 존재할 수 있을지, 정말로 과학의 발전은 그것을 지향하는지. 그것이 인간과 생명체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신은 할 수 있다고만 했지, 보여준 적은 없는데. 과학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여준다. 그런데 그곳 데이터센터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섭게 느껴졌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테러조직과 맥스의 행동이 '선'으로 비춰졌다.




http://www.transcendencemovie.com/post/70628678823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흔한 SF 영화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한다. 어쩌다가 절대악이,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윌의 확장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결국 윌이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윌을 기계로 데이터화하고 싶었던 에블린은, 윌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윌은 에블린이 원하던 대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다. (다행이 이 기술을 장악하겠다는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윌이 심은 프로세스를 망가뜨릴 수 있는 바이러스를 몸에 투여한 에블린은 다시 살아난 윌과 재회하지만 그 바이러스로 인해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있었다. 두 과학자의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의식이라는 것이 지식의 영역 뿐만 아니라 감정의 영역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허구나 환상에 가까웠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그래서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영생을 누리고자 했던 것도 아닌데, 결국은 얼마간 함께 있지도 못하고 서로를 떠나야 하는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얼마나 더 발전할 지 알지 못한다. 지금의 우리 생활도 불과 몇 년 전엔 상상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머잖아 사람과 사람이 전자칩으로 태그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렇게 눈물나는 마음이라는 것이 그러한 엄청난 것들 보다 먼저임을 우리는 알 것이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진부한가. 그렇다. 영화는 진부했다. 첨단 슈퍼컴퓨터와 대적하기 위해 매우 아날로그적인 사막 한 가운데서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라니. 영화는 초반 "인터넷은 세상을 연결한다고 했으나 지금은 인터넷 없는 세상을 더 좁게 만들어버렸다"는 맥스의 대사가 나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면 혹은 그 이상의 첨단 기계들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트랜센던스'는 그 어느쪽이든 "상상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1. 《트랜센던스》는 2014년 공개된 SF 영화이다. 조니 뎁과 모건 프리먼이 참여하며 미국에서는 4월 18일에 한국에서는 5월 15일에 개봉. 인셉션의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의 연출 데뷔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제작자로 참여하며 물심양면 자신의 오래된 파트너를 지원했다.과학기술의 명암과 컴퓨터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세상 속에 놓인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트랜센던스는 초월이라는 뜻이다.위키백과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하이자오 7번지’  (0) 2014.06.19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필로미나의 기적  (0) 2014.05.25
허브농장에서_원주 허브팜  (0) 2014.04.13
2014, 봄, 벚꽃  (0) 2014.04.01
Posted by sokhm
小小2014.05.25 15:19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Philomina, 2013)은 한 사람의 인생에 수많은 역사와 진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의 힘'을 보여준다. 그건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관객에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이 영화는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 필로미나(주디 덴치 분)가 50년 뒤 아들을 찾아나선다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휴먼스토리'를 기사로 쓰려는 전직 BBC 기자 마틴 식스미스(스티븐 쿠건 분)가 등장해 이 스토리에 점점 살을 붙여준다. 사실 이 스토리는 두 사람이 완성해 간다. 그런데 '필로미나의 기적'이라고 이름이 붙은 건(원작은 필로미나지만) 그의 선택이 이 스토리의 총제적인 진실을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스토리는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에서 미혼모들을 감금하고 아이들을 돈을 받고 미국으로 입양보냈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연결된다. 그 '충격적인 사건'은 기자에겐 특종이 된다. 우연치고는 기묘하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사람들의 세계다. 큰 줄기는 이렇고, 이 영화를 보다보면 '아주 좋은 질문들'이 들어 있다. 여기선 기자가 질문만 하는 건 아니다. 그 기자도 질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역시 한 사람으로서 비춰진다. 


    


http://philomenamovie.com/videos.html


Philomena is the true story of one mother’s search for her lost son.

Falling pregnant as a teenager in Ireland in 1952, Philomena was sent to the convent of Roscrea to be looked after as a “fallen woman”. When her baby was only a toddler, he was taken away by the nuns for adoption in America. Philomena spent the next fifty years searching for him in vain.

Then she met Martin Sixsmith, a world-weary political journalist who happened to be intrigued by her story. Together they set off for America on a journey that would not only reveal the extraordinary story of Philomena’s son, but also create an unexpectedly close bond between them.

The film is a compelling narrative of human love and loss and ultimately celebrates life. It is both funny and sad and concerns two very different people, at different stages of their lives, who help each other and show that there is laughter even in the darkest places.

The book “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 was published in 2009. It acted as a catalyst for thousands of adopted Irish children and their ‘shamed’ mothers to come forward to tell their stories. Many are still searching for their lost families.




미국으로 입양된 아들을 찾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필로미나와 마틴. 필로미나는 가톨릭 수녀원에서 감금 당하고 아들을 빼앗겼지만, 신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 마틴은 묻는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면 왜 그러한 고통을 주는가, 라고. 필로미나는 사람을 대할 때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나 늘 '긍정적인 부분'을 찾고, 마틴은 기자답게(?) 늘 의심한다. 그가 "기자는 보이는 것도 안 믿는다"고 말하듯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의 친절에 대해 필로미나는 "친절하기가 백만 명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하지만, 마틴은 그건 돈을 지불한 대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무한히 긍정적인 것도, 또한 무한히 비판적인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옳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두 사람의 삶(직업이나 가족관계나 나이나 모든 면에서)이 너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지만 그들이 하나의 스토리에 함께 수렴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에서 접할 수 있는 이런 심각한 질문들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때론 '시시콜콜'하게 때론 '유쾌하게' 오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건 필로미나라는 사람이 가진 힘이다.

수녀원의 악행을 알고도 필로미나는 그들을 '아주 쉽게' 용서한다. 마틴은 "나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필로미나가 그 순간 마틴에게 "나는 당신처럼 되기 싫다"고 말한다. 매사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마틴에게 가한 일침. 그것이 과연 괜찮은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개인으로서도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그런 의심과 비판들이. 다른 사람의 진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스토리가 두 사람이 함께 여정을 떠나면서 완성되듯이,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도, 이 세계의 진실이라는 것도 아픔을 이겨내는 긍정과 문제를 파고드는 비판과 의심이 공존해야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 http://philomenamovie.com/photos.html



사진출처 : http://philomenamovie.com/photos.html



사진출처 : http://philomenamovie.com/photos.html


필로미나의 용서는 누가봐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가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가능한 것일까. 그는 용서하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았다.  필로미나는 로맨스 소설을 두고 두고 읊을 정도로 소박한 취미를 가진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그가 살아낸 인생에서 이미 사람에 대해 용서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닥쳤던 누군가의 악행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잃어버리게 된 상황들, 아들이 죽은 이후에야 알게 된 진실들 앞에서 '아프지만 견뎌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스토리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취재하면서 그분들의 스토리를 듣고 기사에 옮기면서 비슷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필로미나가 용서했음으로 그 충격적인 사건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된 것은 아니다. 필로미나가 이 '휴먼스토리'를 기사로 쓰도록 선택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후 마틴은 <잃어버린 아이>라는 책을 낸다. (한국에도 번역돼서 나왔다. 필로미나의 기적이라고) 영화 밖의 세계에선 미혼모에 대한 가톨릭 수녀원의 악행, 그들에 대한 사회의 강박적인 시선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고 필로미나 한 사람의 기적이 아니라 그 시절 묵혔던 수많은 이들의 인생에,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세계에 질문을 던졌다.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4.06.13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필로미나의 기적  (0) 2014.05.25
허브농장에서_원주 허브팜  (0) 2014.04.13
2014, 봄, 벚꽃  (0) 2014.04.01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0) 2014.03.30
Posted by sokhm
小小2014.04.13 11:29

서울을 벗어난다는 기쁨, 그것이 가장 먼저였다. 날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4월의 하루. 약간 쌀쌀한 듯한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영동선 원주행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강원도의 원주에 도착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지라 큰 건물 곳곳에 걸개그림이 걸렸다. 원주 시내는 큰 극장과 큰 커피전문점, 그리고 지역 맛집들이 들어선 상가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한우'를 파는 식당이 많아, 여기도 '강원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주에는 허브팜이라는 농장이 있다.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강릉원주대학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30~40분 정도 걸리고, 티머니나 신용카드 교통카드로도 승차할 수 있다. 파란색 버스를 타고 원주 시내를 빠져 나와 허브팜으로 가는 길은 마치 고향으로 가는 길처럼 구불거리기도 하고 마음에 생기를 불러넣기도 했다.




원주허브팜.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버스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처럼 봄햇살이 많은 날에는.


갖가지 허브들이 초록으로 빛났다. 신록이라고 해도 좋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나름의 향기를 냈다. 사람도 그렇겠지, 제 각자의 모양과 향기를 가지고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초록으로 빛나겠지, 라고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쏟아졌다. 




*동절기에는 입장료 4000원(어른 기준)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허브가 제 철을 맞았기에 입장료 7000원이다. 입구에서 허브들을 팔고 있었는데, 허브의 매력은 귀여움이 아닐까 싶다. 향기는 말할 것도 없고.



*허프팜에는 야외 공간과 실내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곳곳에 의자들이 많아 쉬어가기에 좋았다. 도시락을 싸와서 음식을 먹어도 괜찮을 듯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 중 하나인 '족욕뜰'이다. 입장료에 족욕실 이용료가 포함돼 있어서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양말을 벗고 들어가서 허브로 우려낸 족욕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음악도 들리고 향기도 나고 편안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실내(비닐하우스) 뜰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허브도 있고, 허브가 아닌 것도 있고. 향기도 제각각이라서 직접 다가가서 맡아야 제대로 향을 느낄 수 있다.



* 헬리 옥트론이라고 하는 허브. 이 허브에선 달콤한 향이 났다. 카라멜향 같기도 하고 바닐라향 같기도 하고.




*이야기나무는 소원이나 느낌을 리본끈에 적어서 묶어두는 것이다. 야외 공간을 잘 활용했다.



*허브팜 바로 옆 건물에 허브티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허브팜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허브를 보고 만지고(안내판에서 만져보라고 권유한다.) 향기를 맡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이런 게 오감만족이 아닐까 싶다. 허브의 기능을, 메모해 뒀다가 적절하게 이용해보기로.




*허브팜 '전시뜰'에 있던 허브에 관한 정보. 유용한 정보라서 공유!

'小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0) 2014.06.02
필로미나의 기적  (0) 2014.05.25
허브농장에서_원주 허브팜  (0) 2014.04.13
2014, 봄, 벚꽃  (0) 2014.04.01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0) 2014.03.30
영화 <노예 12년>과 솔로몬 노섭  (0) 2014.03.19
Posted by sokhm
TAG 허브
小小2014.04.01 23:46



 


 2014. 3. 30. 서울, 여의도.







2014.4.1 서울, 남산








Posted by sokhm
小小2014.03.30 15:39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1957년 미국 배심원 제도를 다룬 법정 영화다. 살인 혐의를 쓴 18살 소년에 대한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이 유무죄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화는 재판 과정이나 소년에게 실제 벌어졌던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배심원들의 말을 통해서만 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배심원은 사람이다. 곧 12명이 같은 재판에서 같은 증거를 보고, 같은 증인의 말을 듣고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들을 같이 들었음에도 판단의 근거는 저마다 다르게 가지게 된다. 영화는 11명의 배심원이 유죄라고 판단하고 1명이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장일치'가 나오기까지 이들은 토론을 벌이게 된다. 유죄에 가까워보이는 정황과 증거, 증인이 있지만 그것들이 정말 이 소년을 살인범으로 확정할 만한 정확한 증거가 되는가를 하나씩 질문을 함으로써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화는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영역을 짚어냄으로써 우리가 실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물론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법정에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유죄가 아닐 가능성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가능한 한 모든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8세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2명의 배심원들의 발언을 통해 재판에서 나왔던 증거와 증인, 정황 등이 제시된다. 또 12명의 배심원은 각각의 캐릭터가 있다. 이들은 직업과 가정사, 성격, 신념, 출신지, 나이 등으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눈도 다르게 된다. 배심원들이 토론을 벌이는 날은 무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상황. 이들은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계속 토론을 벌여야 한다. 유죄 11 대 무죄 1이라는 시작은, "다수의 결정에 의심을 제기하는 소수"의 구도를 보여준다.

처음엔 유죄라고 생각했던 배심원들도, 자신의 유죄 판단의 근거가 무너지면 무죄라고 입장을 바꾼다. 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고, 이들에게는 최소한 정확하지 않은 근거로 소년에게 유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영화에서는 배심원들에게 번호를 부여한다. 배심원장(배심원 1, 마틴 발삼)은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로 사회를 맡는다. 배심원 2(존 피들러)는 회사원이고 소심한 편이다. 배심원 3(리 J.콥)은 통신회사 사장으로 아들과의 갈등을 겪었던 인물이다. 배심원 4(E.G. 마샬)은 주식거래 중개인으로 보수적이며 확신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배심원 5(잭 클러그먼)은 빈민가 출신이고 배심원 6(페인트 공)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중시하고, 배심원 7(잭 워든)은 세일즈맨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배심원 8(핸리 폰다)은 건축가로 최초의 의심을 던진 인물이다. 배심원 9(조셉 스웨니)는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관찰력이 뛰어나다. 배심원 10(에드 버글리)은 차고를 소유한 인물로 빈민가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인물이다. 배심원 11(조지 보스코벡)은 시계공이며 신중하다. 배심원 12(로버트 웨버)는 광고계에서 일하는 이로 토로에 관심이 없고 우유부단하다.

 

이들의 캐릭터는 영화 전반부터 후반까지 그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는 또 사건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배심원 8은 사실상 주인공으로 그의 의심으로 토론이 벌어진다. 그는 사건의 중요한 증거로 제시된 소년의 '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가슴을 찌른 그 칼이 소년의 칼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는 소년의 동네에서 범행도구로 쓰인 칼과 유사하게 생긴 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구한 칼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것은 100% 확실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건축가라는 그의 직업이 '불완전성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의심은 직업과 상관없이 할 수 있우 것이다.) 그는 증인이라는 윗집 노인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범행시각 고함을 듣고 도망치는 소년을 봤다는 증언에 대해 실제 가능한 일이었는지 재현함으로써 증언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이런 과정이 건축가가 완전한 건물을 지어가는 과정과 흡사해보였다.

 

 

 

가장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 3은 자신의 아들과 갈등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이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증거들의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그것들을 무시하려 애쓴다. 또 배심원 10은 단순히 빈민가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에, 소년이 유죄라고 확신했고, 배심원 9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관찰력으로 증인들의 허점을 읽어냈다. 단순히 토론이 지겨워서 자신과 상관없다는 이유로 무죄나 유죄가 중요하지 않는 배심원도 있었다.

 

토론을 벌일수록 무죄라고 판단하는 배심원의 숫자가 늘어난다. 소년이 왜 범행 이후 3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왔는가, 소년의 범행 현장을 봤다는 이웃집 여성의 증언은 믿을 만한가. 그 여성은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지만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즈음엔 침실에서 안경을 벗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이 새로운 의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소년의 인생을 결정할 판단"은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의심을 통해 확실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결국 "소년이 진짜 범인이고 범인을 풀어주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증거와 정황들만으로 그 소년에게 유죄를 내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흑백영화, 폐쇄적인 공간, 찌는 듯한 무더위. 무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들이 늘어나서 과반을 넘기기 전에 퍼붓는 소나기. 영화는 그 이외의 외부환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발언만으로, 그들의 짧은 행동과 표정 만으로 극을 진행한다. 그래서 흡사 연극 무대를 보고 있는 듯도 하다. (실제로 연극 극본으로 만들어졌다.)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 의심들을 증명해낼 때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바는, 사실 소년이 실제 무죄이냐 유죄이냐보다는 그러한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배심원에 돼서 사건을 판단할 수도 있고, 우리의 머릿속에는 배심원 여러 명이 앉아서 증거들의 완전성을 따져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판단도 불완전하다는 것이고, 둘다 불완전하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확신과 신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없으면 그것이 곧 진실인 것처럼 된다. 그것이 내 편견이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 잘못된 판단이 될 수 있음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민주주의 안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판단에 밀려 중우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수 안에서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여성과 다른 인종 등의 의견도 더해서 말이다. 

Posted by sok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