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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소녀 문화’는 성 정체성을 상품화한 늑대들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


▲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페기 오렌스타인 지음·김현정 옮김 | 에쎄 | 336쪽 | 1만5000원


“저 아이, 온몸으로 ‘저 여자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아.” 어느 쇼핑몰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분홍빛 구두를 신은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누군가 말했다. 이른바 ‘사랑스러운 공주님 패션’이다. 주변에 여자아이들이 많다면 한번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일까’, ‘공주님 소리를 듣고 자라면 여자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질까’.


여성의 성 정체성 형성에 관한 글을 20년간 써온 미국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은 이 물음에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에서 소녀 문화의 속살을 파헤친다. 단지 저널리스트로서가 아닌, 딸을 둔 엄마로서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본 것이다. 저자는 업계 최대의 완구박람회에 들렀다가 수만개의 ‘핑크 제품’을 목격했다. ‘섹시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21)의 콘서트장에도 가고 4~6살짜리 아이들의 미인대회를 직접 취재했다. 또 역사가, 마케터,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그리고 당사자인 부모와 아이들과 면담했다. 20세기 초 메이태그라는 유명한 자동세탁기 브랜드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들은 실용적 관점에 따라 흰옷을 입었다.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게 극대화된 것은 1980년대 마케팅 전략 탓이다. 한 완구제조업체 관계자는 “핑크색 야구 배트를 만들면, 부모들은 딸에게 그걸 사준다. 그리고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다른 색깔의 야구 배트를 사줄 거고 … 어찌 됐건 판매량이 두 배가 된다”고 털어놨다.


부모들은 왜 ‘공주 문화’에 동조하는가. 디즈니사의 설문조사를 보면 엄마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영감’, ‘동정심’, ‘안전’을 공주의 특성으로 여겼다. 저자는 아이가 너무 일찍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부모들의) 심리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디어나 상점에서 홍보하는 인형과 공주는 아름다움과 섹시함에 초점을 맞춘다.


소녀 문화에 노출될수록 여자 아이들은 아름다움과 섹시함에 더 많이 신경쓰게 된다. 이는 주체적인 여성성 형성에 그다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저자가 인용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야망이 적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의욕적이고 진취적인 여자아이조차 이런 문화에 끊임없이 노출되면 학업 성취도가 낮아지고 생각의 범위도 좁아진다.” 이 연구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여성성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던 1970년대 미국 페미니즘의 한 단면을 지적한다. 딸이 옷차림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기관차를 가지고 놀더라도 ‘여자 아이가 왜 그래’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저자 역시 부모로서 당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소녀 문화에 맞설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여성이 되는 과정은 매혹적이지만, 그 길은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소비자인 여자아이들을 동시에 상품으로 소비하겠다고 위협하는 늑대 같은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며 “여자아이들이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한다면, 아이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나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이 화장을 하고 쇼핑몰에선 ‘여신’ 스타일이 유행한다. 걸그룹들의 콘셉트는 온통 ‘섹시’라는 말로 귀결된다. 미디어는 이런 문화를 재생산하고 장려한다. 덩달아 공주를 겨냥한, 혹은 섹시한 여성을 상품화한 소비 문화도 확장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이다. ‘이 문화가 내 딸을(우리를) 집어삼키도록 둘 것인가.’


김향미 기자 sokkh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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