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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이 (현재의) 내게 보내는 메시지 -

*27세의 한 여성이 살인자가 되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카니발 도중 한 댄스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진심으로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괴텐을 만난다. 그와 춤을 추고, 그에게 매료됐으며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한다. 괴텐이 은행강도이자 살인 혐의 수배범인 까닭에 그의 도피를 도왔다는 이유로 블룸은 '빨갱이'가 되고, 음탕한 '창녀'가 되어버린다. 그 일간지 기자는 블룸을 블룸의 명예와 존엄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했다. 살인자인 블룸을 탓할 것인가, 살인을 부른 기자를 탓할 것인가. 판단에 앞서 추가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블룸은 괴텐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며칠간 조사를 받는다. 블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대답하지 않으며 수사시록에는 자신의 행동이나 발언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남길 원한다. 그는 괴텐이 수배범이란 것을 알고서도 자신이 만나왔던 누구보다도 자신이 사랑한 한 사람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감정'에 솔직한 '이성'적인 그다.
 블롬의 행적에 대한 조사가 주변 인물들에게도 진행된다. 블룸이 과연 우연히 괴텐의 도피를 도운 것인지, 그외의 혐의는 없는지에 대한 조사 말이다. 블룸에게 선의의 증언을 베푼 이도 있지마는, 블룸의 환경에 대해 근거없는 악담을 퍼붓는 이도 있다. 블룸은 그들의 증언에 따라 '새로운 인물'로 창조된다. 사실 블룸에 대한 사실이 반영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님을, 우리는 이 책에서도 또한번 읽게 된다.

 블룸은 가정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27세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가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기 때문에 그에게 더 폭력적인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블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괴텐의 도피를 도왔다는 것과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혹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블룸은 언론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블룸은 피의자, 용의자, 적어도 흥미의 대상으로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관심 세례를 받는다.

 그렇다면, 블룸을 대하는 '언론'이란 집단은 블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숱한 정보들을 모은다. 대게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으로, '사람의 말'이 과연 다 팩트(fact)인가에 대한 비판이 없으며 얼마나 허무맹랑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블룸은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명예를 짓밟은 자들에 대한 복수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카타리나 블룸은 시골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학교를 마친 후 도시로 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성실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변에서 인심을 사 몇가지 호의를 받기도 한다. 또 신뢰를 얻는다.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기사가 그 신뢰에서 폭력을 부른다. 블룸이 집안 일을 돕고 있는 블로르나 부부에게서 받은 다소 고가의 아파트가 공산당의 아지트가 되어버린다. 퇴트게스는 블룸을 가리켜 '살인범의 정부'라든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라든가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폄훼한다. 폄훼랄 것도 없이, 이것이야 말로 '명예훼손'이다. 기자는 블룸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어머니는 절도범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날조와 왜곡, 이것이 언론의 '병'이다. 혹은 '흉기'다.
 언론 보도 이후 보이지 않는 않은 이들이 전화로, 익명의 편지로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쏟아 붓는다.
 그녀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공산주의자’라며 몰아댄다.



퇴트게스가 속한 신문이 절대 다수의 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블룸에게는 더욱 더 절망적인 일이었다.
블룸의 살인 사건 이후, 그의 선량한 주변 사람들도 서로에게 주먹다짐을 하게 된다.
블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한 '신사'가 블로르나 부부와 알고 지내는 남성으로, 유부남이었던 것. 그는 블룸에게 함께 지내고 싶다는 표현으로 한 별장의 열쇠를 주었고, 괴텐은 그 별장으로 도피해 있었다. 괴텐이 붙잡힌 이후에 신사의 행각이 드러나자 블로르나 부부와 관계는 악감정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또 블룸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잘나가던 교수 부부였던 블로르나 부부는 삼류인생으로 전락하게 된다. (삼류인생, 이란 표현이 안습이지만)

폭력은 언어로, 주먹으로, 살인으로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폭력의 출발이 괴텐과의 만남이었는지, 괴텐의 도주였는지, 블룸의 주변 인물들의 허무맹랑한 증언 때문이었는지, 퇴트게스 기자의 한 줄의 기사였는지 물을 것도 없다. 작가는 말하고 싶었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대한 집착, 혹은 그 관행 때문에 한 개인, 혹은 다수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죽음과 같은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경고의 메시지를 (현재의) 내게 보낸 것이다.

1970년대 독일의 정신적 공허가 현재 우리의 정신적 공허로 통하는 것 같다. 공허는 잦은 폭력에서 오는 허무쯤.

 그리고 인간의, 존엄명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