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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지난해 결혼을 하고, 올핸 아이를 낳아 어느덧 아기 엄마가 돼버린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한 지방의 기차역에서 이 책을 샀다. 기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고, 무난히 읽어나갈 소설이면 좋겠다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삶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해서, 풋풋하고 아련하고, 때론 어른스러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소설 속 화자들이 중년 남성’, 그것도 여자없는 남자들이라서 도대체 감정이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사고하는가, 이들에게 여자는 절대적이면서도 또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필요한 대상이고, 그런데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대개는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실제로 현실에서 여자 없는 (중년의) 남자들이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이 소설 속의 남자들은 좀 이상했다. 완전함 속에 불완전.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편집이다. 사랑하는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무념하게 무대에 오르는 배우 가후쿠와 그의 전속 운전 기사 미사키가 주고 받은 이야기.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수많은 여성들과 적당히 만나오던 50대 성형외과 의사 도이카가 깊은 사랑에 빠진 후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능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이야기. 부인의 외도를 목격하고 도피하듯 마련한 술집에서 기노라는 주인공이 자신을 지켜보던 남자 가미타와 어떤 여성과의 만남을 풀어나가는 이야기 등등.

 

이런 단편 중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반대 버전, 그러니까 어느날 깨어보니 자신이 인간이 되어 있는 상황. 인간으로 먹는 법, 옷을 입는 법, 여자를 대하는 법 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꽤 재미있다. 텅 빈 집안에 잠자 혼자였고, 열쇠를 고치겠다며 한 여성이 엉거주춤 집으로 온다. 바깥 세계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검열의 시대. 엄혹한 시기에도 방문을 고치는 일, 이런 사소한 일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대목은 왠지 숙연하게 만든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친구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한 의식을 치르고 아이를 낳아 하루 하루, 그 하루속에서 또 하나 하나 삶의 단계를 차분히 거치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친구처럼 나도 그저 하루 하루를 자잘한 일들을 채울지언정 어떤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에 예속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뭉클해졌다. 세계가 미치면, 인간도 미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인간의 정신의 영역은 때로 그 세계의 미침에서 자신의 정상성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무언가를 꼬박꼬박 해내고, 그것이 인간의 사회가 언젠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제정신을 지키기에 팍팍한 사건들이 터지고 상처받기 쉬운 사회다. 그러니 스스로 자잘한 일들을 잘 해내는 것으로서, 맞설 수밖에. 우선 그것부터라도 하는 수밖에.(이건 결코 소극적인 저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그 길마다 차곡차곡 자잘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문득 고맙기도 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세계는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저 인간다움의 세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