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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센던스’ : 상상할 수 있는가



기술의 발전을 목격하면서,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다만, 기계가 '욕망'이란 것을 가질 수 있는가. 늘 욕망을 가진 인간이 최첨단 기계를 장악함으로써, 기계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시도하는 자의 도구가 되었을 뿐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인간이 곧 기계가 된다는 설정은 상상할 수 있는데, 그동안 상상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영화 '트랜센던스' 이야기다. 이 영화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세상의 변화(어쨌든 더 나은 환경과 인간의 삶을 위한)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파괴가 아니라 변화를 꿈꾸고, 새로운 성장과 치유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된 인간은 끔찍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종교적 부활처럼 보이는) 설정은 상상이라기보다는 너무 허무맹랑해서 그 순간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정말 실현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인지, 기계가 된 인간이라는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이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 설정으로 인해 어떤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궁금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 인간의 의식도 데이터화할 수 있는가


 단순히 인간이 처리하기 힘든 수식이나 정보처리 등의 일을 하는 인공지능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하면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는 '트랜센더스'라는 새로운 슈퍼컴퓨터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리고 3명의 천재 과학자가 등장한다. 트랜센더스의 존재를 믿고 개발하는 윌(조니 뎁 분), 그의 부인이자 과학으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에블린(레베카 홀 분), 그리고 이 두사람의 친구이자 과학의 발전과 동시에 그것이 인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맥스(폴 베타니 분)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테러조직 RIFT. 윌이 테러 조직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되자 에블린과 맥스는 윌의 의식을 데이터화하고, 마침내 윌은 슈퍼컴퓨터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컴퓨터는 온전히 윌인가, 윌이 아닌가.




http://www.transcendencemovie.com/post/70628658319





# 기계가 된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는 부활도 가능한가


 윌은 기계된 이후에는 주식시장이며 부동산이며 수많은 금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돈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 물론 에블린이 추진하지만, 실제로는 윌이 벌이는 일이다. 태양력 발전을 이용해 막대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도모한다.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윌이 만든 프로세스는 심지어 물과 공기 중으로 복제돼 나간다.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이 눈이 보이고, 다리를 절룩거리던 사람이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걷고, 체력이 약했던 사람이 갑자기 삼손처럼 힘이 세지고, 결국에는 죽었던 윌이 조직재생이란 기술로 다시 살아나는 것까지. 이것은 마치 성경의 한 장면과 같다. 신의 섭리가 닿은 곳에서 벌어질 법한 구원과 영생의 이미지가, 현실이 되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 거느린 과학의 영역에서. 그래서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과학이 존재할 수 있을지, 정말로 과학의 발전은 그것을 지향하는지. 그것이 인간과 생명체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신은 할 수 있다고만 했지, 보여준 적은 없는데. 과학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여준다. 그런데 그곳 데이터센터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섭게 느껴졌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테러조직과 맥스의 행동이 '선'으로 비춰졌다.




http://www.transcendencemovie.com/post/70628678823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흔한 SF 영화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한다. 어쩌다가 절대악이,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윌의 확장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결국 윌이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윌을 기계로 데이터화하고 싶었던 에블린은, 윌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윌은 에블린이 원하던 대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다. (다행이 이 기술을 장악하겠다는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윌이 심은 프로세스를 망가뜨릴 수 있는 바이러스를 몸에 투여한 에블린은 다시 살아난 윌과 재회하지만 그 바이러스로 인해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있었다. 두 과학자의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의식이라는 것이 지식의 영역 뿐만 아니라 감정의 영역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허구나 환상에 가까웠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그래서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영생을 누리고자 했던 것도 아닌데, 결국은 얼마간 함께 있지도 못하고 서로를 떠나야 하는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얼마나 더 발전할 지 알지 못한다. 지금의 우리 생활도 불과 몇 년 전엔 상상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머잖아 사람과 사람이 전자칩으로 태그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렇게 눈물나는 마음이라는 것이 그러한 엄청난 것들 보다 먼저임을 우리는 알 것이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진부한가. 그렇다. 영화는 진부했다. 첨단 슈퍼컴퓨터와 대적하기 위해 매우 아날로그적인 사막 한 가운데서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라니. 영화는 초반 "인터넷은 세상을 연결한다고 했으나 지금은 인터넷 없는 세상을 더 좁게 만들어버렸다"는 맥스의 대사가 나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면 혹은 그 이상의 첨단 기계들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트랜센던스'는 그 어느쪽이든 "상상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1. 《트랜센던스》는 2014년 공개된 SF 영화이다. 조니 뎁과 모건 프리먼이 참여하며 미국에서는 4월 18일에 한국에서는 5월 15일에 개봉. 인셉션의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의 연출 데뷔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제작자로 참여하며 물심양면 자신의 오래된 파트너를 지원했다.과학기술의 명암과 컴퓨터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세상 속에 놓인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트랜센던스는 초월이라는 뜻이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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