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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또록 또록, 눈물이 맺히는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아픔이, 너무나 선.명.했다. 공선옥 작가의  <그 노래는 어디에서 왔을까>에선 마음에 맺히는 '한 줄'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한 문장이 바로 다음 문장을 불러냈고, 그 문장들은 슬픈 노래의 연속이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2013, 창비)에는 정애와 묘자, 두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1970년말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시골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났던 광주를 배경으로 정애와 묘자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고 찢어지고 슬픔이 되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시대배경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의 삶이 세세하게 묘사되는데도 자꾸만 그 삶이 안타깝고 그 시대가 아프다. 



가난한 시골에서 정애가 이웃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오기까지, 할머니와 살던 묘자가 도시에 나와 광주민주항쟁 때 군인들에게 끌려가 삼청교육대까지 다녀온 '아픈 청년' 박용재를 만나기까지, 정애가 이 도시에서 '그날' 군인들에게 당해 정신을 놓아버리기까지, 묘자가 사랑하는 '박용재'가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 결국엔 묘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묘자가 군인의 애를 가졌다며 자신의 배를 가르려던 박용재를 죽이기게 된 과정이, 정애가 다시 시골로 돌아갔을 때 이웃들이 정애를 말려가는 과정이 슬프고 아프고 그랬는데, 그 시대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 많은 엄마들이 등장한다. 정애와 묘자는 온전한 엄마를 갖지 못했다. 정애는 언어장애가 있는 엄마가, 묘자는 새로 시집을 가버린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곧 사라진다. 그래서 그들은 동생들의 엄마로, 박용재에게 엄마로, 스스로의 엄마로 살아간다. 상처와 아픔은 온천하에 그득그득 붙어있는데, 이를 수용해줄 이를 치유해줄 엄마는 없다. 본인도 엄마가 되기에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미친 세상"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래서 '미친 정애'가 오히려 정상인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한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도 사랑이 있고, 그 삶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창비, 2013)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노래를 한다. 어린 정애가 이웃들에게 겁탈당할 때 노래를 하고, 아픈 박용재가 끼웃끼웃 이상한 소리를 내고, 묘자와 정애를 돌봐주는 숙자는 노래연구소에서 노래를 가르친다. 대나무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생쥐들도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낸다. 뜻이 없는 언어들이, 노래가 돼 여기저기 나온다.





  시골로 갔던 정애가 사라지고, 감옥살이를 하던 묘자가 정애를 그리워했던 한 움큼의 세월이 지나고 어느 가을밤, 흰머리가 난 묘자는 식당 장사를 한다. 어떤 여자가 찾아가 '햇빛 속에서 일렁이는 그림자가 내는 소리' 같은 노래를 한다. 묘자가 여자에게 지금 부르는 노래가 무은 노래냐고 물었다.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이미 세상 저 너머로 간 사람 같기도' 한 목소리가 여자는 말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갈까, 내 노래는 어디로 갈까......"


여자는 그리고 사라졌다. 노랫소리도 사라졌다.


 묘자가 정애인가 싶어 뒤쫓아갔을 때는 여자도 노래도 사라진 뒤였다.

 

두 사람의 인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에 너희들만 벌을 받는 것 같다"고 용순이가 말했다. 어쩌면 이런 삶이 있을까, 싶어서 눈물이 났다. 이 삶은 내가 택한 것도, 내가 나쁘게 가려고 한 것도 없는데도 그렇게만 흘러갔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란 말은, 이들의 삶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건 아닐까. 참혹하고 비참하고 비루하고 억지스러운 시대, 그 시대에서 누군가는 악랄하게, 누군가는 적당하게 타협하고, 누군가는 악을 쓰고 누군가는 미쳐버리는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고 정당한 말은 말이 될 수 없고 말이 될 수 없는 노래들만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되는 시대. 






소설가 손홍규씨는 <당신은 어디서 왔을까>란 칼럼에서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의 제목에서 '노래는 다른 낱말로 대체할 수 있다. 슬픔을 넣어도 되고 희망을 넣어도 된다. 혹은 화해나 용서를 넣어도 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그 용서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용서하되 결코 용서하지 않은,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정서를 동시에 품는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던 그(공선옥 작가)가 최초로 용서했다"고 적었다.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 그 상황을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로 남을지도 모른다. 정애는 자신에게 악을 행한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는다. 정애는 자신이 노래를 부를 때 그들 스스로 부끄러워 몸서리치며 땀을 흘리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