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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미국 유기농 전문 매장

“오늘 저녁 식탁에 오른 샐러드와 닭고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미국인들 사이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기농(organic)’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13일 찾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유기농 전문매장인 PCC 내추럴 마켓 에드먼드 지점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PCC 마켓은 ‘푸짓 소비자 연합(Puget Consumer Corporate)’의 줄임말로, 푸짓은 워싱턴주에 살았던 원주민의 이름이다. 이 마켓은 1953년 15개 가족이 공동으로 식품을 구매하면서 출발한 소매업체다. 워싱턴주에 총 9개의 매장이 있으며, 에드먼드점은 2008년에 문을 열었다.

PCC 마켓 운영진의 설명에 따르면 PCC 마켓은 근거리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들을 매장에 들여놓으며, 94%가 미 농무성(USDA)이나 워싱턴주의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이다. PCC 마켓의 지난해 매출액은 1억3792만달러(약 1600억원)를 기록했다. 2008년(1억3319만달러)과 2007년(1억1521만달러)에 이어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기농 소비가 늘어난 데에 대해 PCC 마켓 운영진은 “미국 소비자들은 음식의 출처를 알고 싶어한다”면서 “유기농 식재료를 사는 것이 건강과 환경, 그리고 이 커뮤니티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PCC 마켓 매장에 진열된 상품에는 USDA 유기농 인증 표시(USDA organic)가 붙어있을 뿐만 아니라, 육류의 경우에는 해당 동물을 구금해 키우지 않았다는 표시나 호르몬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확인서가 붙어있다. 또한 곳곳에 유기농 식품은 유전자변형(GMO)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선전 문구들이 가득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변형 연어에 대해 식품으로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달에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등 23개주의 대형 양계장에서 생산된 달걀이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채 유통된 사실이 드러나 5억5000만개 이상이 리콜됐다. ‘자연스럽게 먹을거리를 키워냈다’는 것을 전문기관에서 인증받아야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식재료가 건강과 환경에 해롭다는 미국인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PCC 마켓 에드몬드 매장에서 만난 지역주민 데보라 하그로브(53)는 “유기농 식품을 주로 구입하는데 이 매장이 집과 가깝고 품질이 좋다”며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이 매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11살과 14살 자녀를 둔 하그로브는 아이들이 생긴 뒤부터 자연스럽게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면서 “특히 육류와 우유는 호르몬이 들어 있어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전업주부는 “품질이 좋고, 맛이 좋아서” PCC 마켓을 찾는다고 말했다. 유기농 식품 및 제품들은 일반 상품보다 가격이 20~30%에서 최대 3배 이상 비싸다. 비용 부담에 대해서 그는 “이곳에 오는 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답했다.

PCC 마켓은 지역 농부들이 유기농 농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농장 신용 프로그램(Farmland trust)’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99년 PCC 마켓이 지원하는 비영리기금으로, 미 북서지방에서 농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소규모 농장주들에게 유기농법을 알려주고, 유기농 식품 및 제품을 홍보해 판매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홀푸드(Whole Foods)’와 ‘트레이더 조(Trader Joe’s)’ 등 유기농 제품들을 판매하는 전문 대형 마트들이 이미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소규모 농장과 소매업자들은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유기농 산업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미국 내 17개주가 유기농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연방정부가 인정한 29개의 사설 유기농 인증 에이전트가 유기농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실시한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USDA는 건당 1만1000달러, 워싱턴주는 1000달러의 벌금을 물린다.

미 유기농무역협회(OT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유기농 식품 산업의 성장률은 5.1%를 기록했다. 전체 식품 시장에서 4%(248억달러) 정도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 USDA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이 있는 미 가정의 73%가 유기농 제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50개주 78%의 농장주들이 향후 5년 이내에 유기농 식품이나 제품을 생산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캐나다의 경우 지난해 유기농 식료품이 전체 6.8%(4억4320만달러)를 차지했다. 2008년 캐나다의 유기농 시장 가치는 20억달러로 2006년보다 약 2배가량 늘었다. 경제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유기농으로의 전환은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라는 연구결과도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한다는 유기농의 가치에 대한 의식은 공유하면서도, 소농들은 유기농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선뜻 뛰어들 수 없고, 고가의 유기농 상품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소비자는 고소득층일 수밖에 없다. 유기농에 대해 ‘엘리트 좌파의 미식 운동’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최근 텃밭을 가꾸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는데, 이는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식탁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라는 평가다.

PCC 매장의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