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小小

영화 <노예 12년>과 솔로몬 노섭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참 다행한 일인건가. 영화 <노예 12년>은 미국의 인종차별이 심했던 1840년대를 배경으로, 자유주에서 자유인이었던 주인공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분)이 '납치'돼 노예주로 팔려나가 12년동안 겪어야 했던 역경을 그리고 있다.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고, '신에 복종한다'는 성경 구절이 곧 '흑인은 백인에 복종한다'로 해석돼 흑인들은 '노예'가 되고, 노예는 노예시장에서 값이 매겨져 팔려나갔다. (자유인증명서가 없는 한, 노예제가 합법인 그곳에선 그랬다.)


<노예 12년>은 인류 역사의 한 사건을 재연하는 영화다. 현재의 관점에서 비이성적이고, 반인류적인 사건. 영화 속 화면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라는 데서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던져준다. 저것은 인간이 한 '짓'이다. 솔로몬은 어느날 갑자기 노예 신분이 되고,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분),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분)를 '주인'으로 만나게 된다. 솔로몬은 노예 신분인 것을 부정했지만 잔인한 폭력 속에 시간이 흐르면서 '살고 싶다는 것' 자체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그가 굴육과 폭력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대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고 싶다는  희망"이었다.


'인간의 상품화'를 경계하지만, 수많은 영역에서 인간은 상품화돼 있다. <노예 12년>처럼 사람 그 자체를 금액을 매겨 거래를 하는 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다. <노예 12년>에서 백인들에게 '노예'는 곧 자산이었고, 그 자산에 대한 이용권한은 주인에게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자산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자유인 증명서'가 없는 인간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가혹한 노동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외에서 여전히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물론 사람을 돈주고 사고 파는 행위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소득이 낮은 국가의 노동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를 찾는 시장 국가로 팔려가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언어폭력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솔로몬이 겪었듯이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는, 그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은 약자이고 피해자이다. 




영화는 사실적이어서 더 끔찍했다. 사람에게 채찍질을 하고, 서로를 채찍질을 하도록 만드는 상황은 참담했다. 노예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백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백인들조차 "위험하게 될지도 몰라",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문과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인간이 시대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의 다양한 층위를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준다. 에드윈 엡스는 노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여성 노예에게 끌리는 자신과 대면해야 했고, 윌리엄 포드는 솔로몬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려 했지만 그가 노예라는 것을 감안한 배려였고, 베스(브래드 피트)는 그의 편지를 보내줌으로써 자유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다. 솔로몬은 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거나 그들의 악행에 눈감거나, 매순간 고민해야 했다. 솔로몬은 단 한번의 저항이 곧 죽음으로 귀결되는 걸 목격했다. 


솔로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래서 솔로몬이 자유인이 됐을 때 '다행이다' 싶었지만, 다른 노예들의 얼굴이 잔상에 남아 맴돌았다. 그것은 '노예제'라는 그 제도가 실존했다는 메시지였다. 영화 작품으로서의 우수성은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인정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 ‘노예 12년’은 올해 제86회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3년 5월 북미 개봉 당시 포스터. 공식 홈페이지 


2014년 2월 한국 개봉 포스터. 한국 공식 홈페이지.






솔로몬 노섭 Solomon Northup

1808-1863


솔로몬 노섭은 미 뉴욕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자유인)이다. 그는 음악가였고, 땅을 소유한 농장주였다. 1841년 그는 바이올린니스트로서 일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워싱턴DC(노예 거래가 합법인 곳)에 갔다가 노예 밀수자들에 의해 납치됐다. 솔로몬은 루이지애나에 있는 한 농장주에게 팔리게 됐고, 12년간 여러 명에게 팔려다니며 '노예'로 살아야 했다. 솔로몬은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노예제 구족 속에서 그것은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도 그가 편지를 보내려 했다가 좌절되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솔로몬은 한 캐나다인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었고, 그는 자유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이후 노예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친 이들을 도왔다.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853년 <노예 12년>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당시 큰 화제를 뿌리면서 노예폐지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사진 : Solomon Northup (1853), 12years a slave (Twelve years a slave ed.), Auburn: Derby and Miller  : 위키피디아





영화 <노예 12년>의 최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원작(<Twelve Years A Slave)>이 국내에도 4권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도 영화가 흥행 기미를 보이자 수십 개 판본이 동시에 나왔다. 원작의 저작권이 없다. 기사 읽기 >>‘노예 12년’ 출판사 4곳서 동시 출간


바로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가 161년 전의 인명 오기를 바로잡았다. 솔로몬 노섭의 인생역정을 소개한 1853년 1월20일자 기사에서 노섭의 이름 표기가 본문에는 ‘Northrop’으로 제목에는 ‘Northrup’으로 표기됐다며 이를 정정한 것이다. NYT는 한 트위터 사용자가 뉴욕타임스 아카이브에서 노섭의 인명 표기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주었다고 밝혔다. 161년이 지났더라도, 그 기한이 얼마가 걸릴지라도 사실이 드러났다면 (역사의 작은)오류라도 바로 잡는 건 언론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다. 기사 읽기>> 영화 ‘노예 12년’ 주인공 161년전 신문 기사에 난 이름 바로 잡은 사연



이미지: NYT 캡처


이미지: NYT 캡처

>>뉴욕타임스 정정 기사